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최근 많이 언급되는 단어가 ‘반사이익’이다. 지난 3월 발생한 일본 지진의 영향으로 현지 반도체와 웨이퍼 공장 중 상당수가 가동을 멈춘데다가 앞으로 제한송전 등으로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부터 부쩍 회자되고 있다.
업계는 이달 들어 메모리반도체나 웨이퍼 등 일부 품목에서 가격 인상 등을 통해 국내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피해가 빠르게 복구되고 있으며 웨이퍼 등의 공급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지만 산업 현장에서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일본 반도체나 웨이퍼 업체에 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하는 현지 2, 3차 협력업체 피해 현황이 아직까지 제대로 집계되지 않아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미지수다. 이달 말이면 대략적인 피해 상황이 집계돼 세계 반도체 시장에 미칠 영향이 구체적으로 분석될 전망이다.
‘반사이익’은 경쟁 상대가 오류를 범하거나 피해를 입으면 상대방이 그에 따른 이득을 얻는 것을 뜻한다.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 시장과 전체 이익이 일정해 한쪽에서 손해를 보면 다른 한쪽에서 이득을 보는 ‘제로섬(zero-sum)’ 시장에 주로 인용된다.
세계적으로 미세공정 투자와 가격 싸움이 치열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업체에게 큰 경쟁 상대인 일본 기업이 피해를 입으면 대다수의 국내 업체들은 그만큼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국가적인 재앙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웃국가를 상대로 이해득실만을 따지는 것은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지난 10여 년간 국내 기업들의 실력이 향상되면서 이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따라잡아야할 대상이 아닌 첨단 기술 개발을 앞 다투는 ‘선의의 경쟁자’에 가깝다. 많은 일본 부품과 소재업체들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소중한 협력사들이다. 이들의 피해는 곧 우리 기업에게도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세월 우리 반도체 업계는 일본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해온 것이지 반사이익으로 커온 것이 아니다. ‘무임승차’로는 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