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는 미국, 하드웨어는 한국.’ 세계 IT산업계의 불문율이다. 새 공식이 등장했다. ‘하드웨어는 차이완(중국+대만).’
세트부터 부품까지 차이완 기업들은 한국 기업의 추격자를 넘어 경쟁자로 성장했다. 우리 기업에 익숙한 ‘세계 처음’이란 수식어가 이제 차이완 기업에 붙기 시작했다. 중국 화웨이는 ‘안드로이드 허니콤 3.2’를 탑재한 스마트패드를 첫 개발, 3분기에 출시한다. 대만 HTC는 미국 버라이즌의 첫 4세대(G) LTE폰을 출시한 데 이어 한국 첫 4G 스마트폰도 내놓는다. 한국 기업이 지나간 자리에 떨어진 열매를 차이완 기업이 주워 먹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차이완 IT의 약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이다. 최근 달라질 조짐이 보인다. 애플이 내년에 나올 차기 아이패드에 넣을 ‘A6프로세서’를 대만 TSMC로부터 조달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삼성전자의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애플의 심산이겠지만 대안이 하필 대만 업체다.
터치스크린패널(TSP)은 스마트기기의 핵심 디스플레이다. 대만 TSP업체들은 대세인 글라스 형을 앞세워 애플은 물론이고 삼성과 LG에도 공급, 안방까지 들어올 태세다. 중국 BOE는 8.5세대 LCD 양산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양한 제품을 빨리 내놓는 제조력과 부품 수급력은 우리 기업의 경쟁우위 요소였다. 이젠 차이완 기업도 우리만큼 한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개발력은 우리보다 낫다. 차이완 기업들이 세계 하드웨어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을 내모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다고 우리 IT산업의 핵심인 하드웨어를 포기할 수 없다. 메모리반도체와 LCD, AM OLED 등 핵심 부품 기술은 아직 우월하다. TV와 가전 시장 지배력도 여전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아성을 지켜야 한다. 지키지 못할지라도 하드웨어 아닌 분야에서 역량을 갖출 시간을 벌 때까지 버텨야 한다. 독자 OS와 앱스토어 같은 플랫폼 사업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삼성전자의 ‘바다’와 SK텔레콤의 ‘T스토어’가 애플과 구글의 OS와 앱스토어보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하드웨어뿐인 우리 IT산업의 유일한 탈출구다.
중국 이동통신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과 차이나유니콤은 독자적인 모바일 운용체계(OS)로 애플과 구글에 맞선다. 언뜻 무모해 보이나 거대 시장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아래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거대 시장도, 정부의 IT산업 육성 의지도 없다. 기업만이 희망이다. 그렇다고 홀로 경쟁하기에 애플과 차이완 기업이 너무 강력하다. 아무리 삼성전자라 해도 버겁다. 부품과 소프트웨어는 물론 ‘바다’나 ‘T스토어’까지 업계 공통 자산으로 쓸 정도의 개방과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IT산업은 머잖아 하드웨어까지 내줘 빈껍데기만 남는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