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 산업이 신성장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1995년 500억달러 시장규모를 기록, 전체 IC 시장규모(1000억달러)의 절반을 차지했던 메모리는 그 이후 2000년 후반까지 단 한 차례도 그 규모를 넘지 못했다. PC시장의 한계, 대만 등 후발기업의 과잉 투자에 따른 가격붕괴 탓이다. 한때 국내 기업마저 적자를 기록하면서 메모리반도체는 투기성 산업으로까지 치부됐다. 그러나 이제 메모리반도체는 신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년 이상 메모리 시장을 이끌어왔던 PC 수요 위축으로 인터넷·모바일이 그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PC용 D램 반도체 ‘독주’는 막을 내리고 낸드플래시를 비롯해 서버용 D램, 모바일 D램과 같은 스페셜 D램도 주역의 반열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호황기를 누렸던 메모리반도체는 올해 PC 가격 붕괴로 주춤하지만 모바일 분야 메모리 성장이 이를 상쇄하는 모습이다.
시장이 다변화되면서 업계 판도 변화도 예고된다. 시장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는 ‘메이드 인 코리아’ 반도체 기상 전망은 ‘맑음’이다. D램 시장에서 20여년간 부동의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는 삼성전자와 선두권 대열에서 동반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하이닉스 등 우리 반도체 명가들은 위세를 더 떨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07년부터 2년간 지속된 반도체 경기 불황의 위기를 넘기면서 경쟁력을 높여온 데 비결이 있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 1위 품목이다. 관세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대 규모인 515억달러를 달성했다. 지난 2001년과 비교할 때 10년간 3.6배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선박, 자동차 등을 제치고 최대 수출품목으로 올라섰다. 전체 수출 반도체 중 절반가량이 메모리반도체로 수출 규모는 285억달러를 기록했다. 수출 효자 품목이 불황을 겪게 되면 우리 경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 변화를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메모리 1000억달러 시대 온다=PC와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면서 나타났던 1차 디지털 혁명에 이어 모바일 중심의 2차 디지털 혁명으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이른바 ‘메모리 신성장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디지털 기기가 스마트화되고 디지털 콘텐츠가 고도화될수록 기기당 메모리 탑재량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스마트폰의 D램 반도체 탑재량은 작년 대비 2014년에는 3.8배 늘어나고 같은 기간 동안 낸드플래시는 9.2배나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스마트패드도 D램은 9.8배 늘고 낸드 플래시는 4배가량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수십년간 메모리 시장을 주도한 것은 PC용 D램 반도체였다. PC 판매량에 따라 비례하게 D램 수요도 변동됐다. PC 판매량이 늘어날 때는 메모리 반도체도 호황기였고 반대로 수요가 줄어들면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함께 하락세를 걸었다. 지난해 말부터 PC 수요가 급감하면서 메모리 주도권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PC보다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등 모바일 제품이 주도하면서 D램보다 낸드플래시가 더 주목받고 있다. D램 반도체는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물량이 늘어나지만 PC용 수요를 대체하는 것이어서 전체 증가율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아이서플라이 예측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2015년까지 D램 반도체 시장 평균 증가율은 0.1%에 불과하다. 반면에 같은 기간 동안 낸드플래시 증가율은 평균 9%에 달한다.
권오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모바일 중심의 2차 디지털 혁명기를 맞이해 메모리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며 “반면에 업계의 과점화와 기술한계, 수요 특성의 고도화로 공급 증가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상 최대 호황기였던 지난해 메모리반도체 시장 규모는 약 680억달러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면서 메모리 시장 수요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영향으로 2015년 800억달러 규모를 넘어서고 이후 3년 만인 2018년에는 1000억달러(100조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 1995년 시장 규모 500억달러를 넘어선 이후 23년 만에 두 배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프1>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성장
<표> 연도별 D램·낸드플래시 시장 규모 및 증가율 (단위:백만달러)
(자료:아이서플라이)
◇불꽃 튀는 신기술 경쟁=메모리 산업은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하고 기술 난도가 높아 이제 신규 진출은 불가능하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치킨게임’이 극으로 치닫던 2차 메모리 반도체 불황기를 거치고 2009년 독일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키몬다가 파산하면서 업계 구조조정이 일어났다.
모바일 시장 확산으로 메모리 수요가 계속 확대될 전망이지만 일부 반도체 기업들의 시장 과점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엘피다, 마이크론 4개 기업이 미세공정 전환이나 신물질 도입 등을 경쟁적으로 펼쳐, 수익성 확대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PC용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이 각각 40%를 돌파하는 등 50% 점유율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50%가 넘으면 그동안 PC업체나 스마트관련 기기 업체들이 가졌던 가격 결정권을 삼성전자가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세공정 전환도 치열하다. 삼성전자는 이미 20나노급에 진입했으며 30나노급 비중도 절반을 넘어섰다. 하이닉스도 30나노급 전환에 속도를 높이면서 삼성전자를 빠르게 쫓고 있다. 일본 엘피다도 미세공정 전환을 서두르면서 우리 기업 추격에 나섰다.
내년에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치 도입 확대 등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된다. 기술 경쟁은 막대한 투자 비용도 감내해야 한다. 물리적 한계점이라고 일컫는 10나노급 단계로 넘어서면 투자 규모를 산정하기조차 어렵다.
김형준 서울대 교수는 “셀구조 개선이나 신물질 적용, 고효율 셀과 적층 개발 등이 이뤄지면서 메모리반도체 상위 3개 기업들은 20나노급까지는 어느 정도 도달할 것”이라며 “그러나 내년 하반기부터 거론될 10나노급 기술경쟁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본격적인 경쟁은 이때 다시 촉발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래프2> 기업별 D램 미세공정 전환
<그래프3> 메모리 기술 변화 추이
<대박스> 또다시 구조조정에 놓인 메모리 업계
지난해 말부터 PC 수요가 급감하면서 PC용 D램 반도체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 2001년, 2007년 반도체 업계에 몰려왔던 장기 불황 쓰나미가 다시 몰아닥친 것이다.
반도체 업계는 구조조정을 통한 업계 재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첫 신호는 대만에서 날아왔다. 대만 대표적 D램 업체인 난야가 D램 감산에 들어간 데 이어 파워칩도 50% 감산을 발표했다. 대만 프로모스는 상반기 실적을 발표하지 못해 대만 증시에서 일시 거래 정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대만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자금 부족을 이유로 연말 동반 사업 철수가 점쳐지고 있다.
대만에 이어 일본 엘피다도 ‘감산 불가피설’이 거론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국내 기업도 3분기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이전에도 어려운 상황은 계속 반복됐다. 지난 2001년 불황기 때는 미국 마이크론이나 독일 인피니언 등이 하이닉스 인수를 타진하기도 했다.
2007년 불황기 때에는 파워칩·프로모스·렉스칩·난야테크놀로지·이노테라메모리·윈본드일렉트로닉스 등 대만 기업이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 이때 투자 중단 등의 여파로 지난해 호황기에도 이들 기업은 거의 수익을 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위기에서 파산이 확실시되는 대만 5개사와 엘피다 간의 합작사 설립 등이 이루어질 것으로 관측한다. 지난 2007년 불황기에는 5위 메모리업체였던 독일 키몬다가 파산하면서 전체 업계의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이 멈췄다.
그러나 대만업체가 사업 중단이나 파산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이 10% 미만에 그치는 만큼 큰 영향을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만 기업들과 일본 엘피다가 주춤하는 사이에 국내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이 한층 높아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시장 점유율이 39.7%에 달했으나 2분기에는 41.6%로 한 분기 사이에 1.9%포인트가 늘어났다. 하이닉스도 1분기 23.2%에서 2분기 23.4%로 늘어났다.
<표2> 업체별 시장 점유율 차이 (단위:%)
<특별취재팀> 서동규차장(팀장) dkseo@etnews.co.kr, 서한·양종석·윤건일·문보경·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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