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금속활자와 인쇄전자

[ET단상]금속활자와 인쇄전자

 윤상직 지식경제부 제1차관 szyoon@mke.go.kr

 

 우리나라는 고려 고종 1230년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99년 미국 ‘라이프’ 잡지는 지난 1000년 동안 인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100대 사건 중 독일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를 1위로 선정한 바 있다. 우리나라가 독일보다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도 이를 널리 활용하고 보급하는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는 선조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던 인쇄분야에서 고성장 미래 산업을 재탄생시키고 있다. 바로 플라스틱 필름과 같은 유연한 기판에 전도체 잉크로 전자회로를 그리는 다양한 프린팅 기법을 이용해 부품, 소자 등을 종이에 인쇄하듯이 제조하는 인쇄전자(Printed Electronics) 기술이다.

 현재 인쇄전자 기술은 디스플레이 생산 공정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포스터 형태의 TV, 전자태그(RFID), 메모리,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조명 등 이용범위가 광범위하다. 이외에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적용이 용이하다. 인쇄전자 산업은 친환경적이다. 화학약품을 사용해 식각하는 에칭공정 등 기존 생산시스템이 상온에서 프린팅하는 무공해 공정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원가절감은 물론이고 공정시간 단축, 폐기물 감소 등 장점이 많은 인쇄전자 기술은 아직 상용화 초기단계다. 그러나 앞으로 IT, NT 등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생산 공정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된다.

 선진국들은 이 기술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3월 6대 미래기술의 하나로 선정해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또 지식경제부는 인쇄전자 시장선점을 위해 국제표준화 주도권 잡기에 노력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국제학회를 통해 이 분야의 국제표준화 필요성을 제기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 전문가와 공감대를 형성해왔다. 지난 4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 기술위원회(TC) 설립 제안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다. 이어 IEC 전체 81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약 3개월간 공식 회람을 거쳐 투표를 진행, 이달 19일 마침내 인쇄전자 TC 신설을 확정했다.

 100여년 IEC 역사에서 TC가 95개밖에 설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TC 설립을 시도한 적은 처음이다. IEC에서 TC 신설 의미는 올림픽에서 경기종목 하나를 새롭게 추가하는 것에 버금가는 쾌거다. 일반적으로 TC를 제안한 국가가 의장·간사 등 임원 지위를 부여받게 되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인쇄전자 분야 국제표준화는 우리가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대한 효과로 우리나라 산업 상황을 고려해 국제표준 제정 속도의 완급을 조절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기술의 상용화 및 새로운 시장창출에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뿐 아니라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위상도 한층 높아질 것이다.

 이번 IEC 인쇄전자 TC 신규 설립은 우리나라 국제표준화 활동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동안 관련 업계와 전문가, 정부 관계자들이 서로 혼연일체가 되어 이룬 작품이다. 인쇄전자 기술 동향 및 세계 시장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사전에 치밀한 합동전략을 수립했다. 또 다른 국가들보다 한 발 앞선 이니셔티브를 확보하기 위해 입체적인 국제협력과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의 축적된 표준외교 노하우가 밑받침이 되어 큰 결실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고도 기술과 제품을 확산시키지 못해 기억되지 못한 뼈아픈 역사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인쇄전자 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국제표준화에 매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