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학개혁 상징이던 서남표 KAIST 총장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대놓고 얘기하면 ‘리더십’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지난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서 총장 개혁이 오히려 개혁 대상이 아니냐는 질책성 질문이 잇따라 제기됐다. 아이러니다. 얼마전 일부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서 총장의 개혁에 박수를 치며, 교수들의 ‘철밥통’을 깼다는 찬사를 내놨었다.
서울대와 포스텍 등 국내 대학들이 서 총장의 개혁 바람에 편승해 테뉴어(종신계약)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테뉴어는 교수사회에서 화두가 됐었다. 서 총장은 입학사정제를 전국 대학 최초로 도입해 대학입시의 새로운 모델도 제시했다.
극적인 반전은 올해 초 KAIST 학생과 교수의 잇단 자살로 전국이 들끓면서 일어났다. KAIST는 급기야 학교 측과 교수, 학생이 참여하는 혁신비상위원회를 구성했고, 지난 4월 수습책 26개 항목을 내놨다.
서 총장은 수업료 제도나 학기제 개선 등 모두가 개혁의 후퇴라고 생각할만한 내용들이지만 모두 수용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7번째 항목 ‘대학평의회’ 설치도 지난 7일 받아들였다.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에 대화의 물꼬를 연 셈이다.
사실 총장과 교수협의회 간 불협화음도, 특허취득에 관한 의혹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난도, 미국 MIT교수 재직시절의 뒷얘기도 ‘대학평의회’ 설치여부가 빌미가 됐다.
KAIST ‘대학평의회’ 관련 규정은 지난 1998년 처음 생겼다. KAIST 직제규정 22조에 ‘대학평의회’를 건의·자문 기구로 설치하도록 했다. 그러나 하위규정은 다르다. 지난 2003년 개정한 대학평의회 규정에는 심의·의결기구로 돼 있다. 총장이 평의회 의결사항을 거부해도 평의회가 재의결하면 이를 지체없이 이행하도록 규정해 놨다. 상충되는 이 부분이 갈등의 보이지 않은 핵심이었다.
지난 국감에서 교과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교수협의회장을 참고인으로 불러 교수협 설문의 객관성 여부를 따져 묻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수 의원들은 서 총장을 일방적으로 압박했다. 서 총장은 아예 입을 굳게 닫았고, 나중에는 변론마저 포기했다.
서 총장은 일의 절차에 매달리기 보다는 일의 성사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는 스타일이다. ‘대학평의회’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서총장은 ‘내상’도 상당히 입었다. 교수협의회는 협의회대로 논란거리를 양산해 KAIST가 우리나라 최고 이공계 대학이라는 위상에 흠집을 냈다.
KAIST는 지금 모두가 망하는 길로 갈지, 아니면 새로운 도약의 길로 접어들지 갈림길에 서 있다. 타협의 테이블에 대학-교수-학생이 앉아 중지를 모을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