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게 물었다. “애플은 하드웨어 회사입니까? 아니면 소프트웨어 회사입니까?” 그는 답했다. “애플은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아름다운 하드웨어에 담는 회사입니다.” 소프트웨어(SW) 시대가 온 것이다.
2001년 여름, 과학기술부 장관을 하던 때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인적자원 장관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렸다. 당시 교육부총리가 미국 타임지에 난 ‘IT 강국 코리아’ 기사를 들고 와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손을 들어 대통령에게 말했다. “초고속통신망이 조기에 잘 깔린 점, 국민들이 컴퓨터를 잘 다루고 통신 인프라가 잘 구축된 점, 반도체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인 점 등은 큰 성취입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와 원천기술 없이 IT 강국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상대로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때 나는 정치인, 기업인들을 만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9대 1 시대에서 1대 9시대가 온다고 설득했다. 소프트웨어 인재를 양성하는 전문 고등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교육 여건상 만들지 못했다.
세계 SW 산업 성장률은 제조업 10배 수준이다. 시장 규모도 반도체의 3.4배, 휴대폰의 5.7배다. 전통산업의 SW 활용도 중요해졌다. BMW는 애플과, 아우디는 구글과, 포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해 자동차의 품질을 높인다. ‘스마트 폰’이나 ‘스마트 TV’를 넘어 ‘스마트 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
세계 SW 시장에서 ‘IT강국(?)’의 현주소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경쟁력이 OECD 19개국 중 14위다.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비중도 1.8%에 불과하다. 2010년 글로벌 500대 SW 기업에 한국 기업이 단 한곳도 없다. 우리 SW산업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기업은 지나치게 영세하다. 매출 50억원 미만 영세업체가 무려 87.8%를 차지한다. 2010년 SW 산업의 1인당 부가가치는 6100만원으로 평균에 비해 약 700만원 정도 적다.
영세성은 대기업의 SW 일감 몰아주기와 불합리한 하도급 관행이 주요 원인이다. 일감 몰아주기는 매우 심각하다. SI는 소규모 자본으로 회사를 설립할 수 있고, 기술적 진입장벽이 낮아 대기업이 쉽게 설립할 수 있다. 편법증여 수단이 되기도 한다.
S대기업이 만든 SI 자회사 내부거래는 64%다. T사는 회장이 아들에게 SI회사 지분 49.98%를 배정한 후 회사 매출이 4년 만에 3배가량 높아졌다. 이 회사의 내부매출은 90%다.
하도급도 심각하다. 상식을 벗어난 견적 낮추기, 무상으로 제품 추가요구, 인력과 기술 빼가기,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가 만연하다. 우리 SW산업은 모래 위의 성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인력 부족 역시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 한국 SW 기업의 R&D는 매출 대비 1% 미만 수준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5%, IBM이 6%를 R&D에 투자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낮다. 주요 4개 대학 SW 전공자 졸업생은 최근 4년간 3분의 2 수준으로 급감했다. SW는 미국에서 매우 각광받는 진로이지만, 우리나라에선 관련 학과 교수조차도 자녀가 전공을 하겠다면 반대한다고 한다. 어느새 기피 대상이 됐다.
상위 1% 이공계 인재들이 모두 의대, 치대, 한의대로만 몰린다. SW 산업의 열악한 처우로 우수한 학생들이 공부하기를 기피하고, 인력부족은 결국 산업경쟁력을 악화시킨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SW 인력, 좀 더 넓게 이공계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SW 개발에 도전하고 창업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대·중소기업 상생을 정착시켜야 한다. 스티브잡스나 마크 주커버그가 한국에서 창업했다면 지금쯤 대기업 IT 자회사의 과장이나 부장쯤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대기업이 시장을 주도해선 안 된다. 대기업 프로그래머 1000명이 아니라, 1000개의 중소기업, 벤처가 소프트웨어 시장을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김영환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 digitalm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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