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잡스는 공학도가 아니었다(?)

 지난해 ‘소셜네트워크’라는 영화가 개봉됐다. 온라인상에서 5억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지만 정작 자신을 이해해주는 진정한 친구는 없다는 천재의 고독함을 다룬 영화다. 기술 진보가 인간다운 삶과 결코 비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첨단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하지만 삶의 질을 반드시 높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성능이 뛰어나고 기능이 많은 새로운 IT기기를 접할 때마다 더 편리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기기를 쓰는 행복감 정도는 또 다른 문제다.

 혁신이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창조는 머리에서 시작된다. 혁신은 있는 것을 더 편리하게 하지만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이다.

 창조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상상력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이 바탕이 돼야 가능하다.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는 IT기기는 바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의 상상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다.

 애플의 아이폰이 단순히 기능이 뛰어난 IT기기에 불과했다면 세계 사람들이 이처럼 열광할 수 있었을까. 아이폰에는 사람을 중심으로 문화와 가치를 따지는 인문학적 사고가 녹아있다. 빌게이츠도 ‘인문학이 없었다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황의 법칙’으로 유명한 황창규 지식경제부 연구개발(R&D)전략기획단장은 향후 기술의 방향을 설정하려면 IT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한 ‘휴머니테크’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자인 전문대학인 미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 존 마에다 총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는 예술가로서의 소양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리드형 인간이 앞으로 새로운 시대의 인재상이 될 것이라는 의미다.

 존 마에다 총장과 황창규 단장 둘 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과학자를 양성하는 것으로 유명한 미 메사추세츠공대(MIT) 출신이다.

 좀 늦긴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인간중심형 기술 개발과 인재양성이 확산되고 있다. 이공계 대학들도 인문학 교육프로그램을 잇따라 도입하는 분위기다. 인문학과 IT기술에 능한 융합형 인재에 대한 수요도 높다.

 정부의 IT명품인재양성사업에도 관심이 많다. 포스텍이 이 사업자로 선정된 후 지원자가 쇄도했다. 포항공대는 내년부터 인문학적 소양을 두루 갖춘 공학도 양성에 나설 계획이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가 아니라 문학과 역사, 예술 등 분야를 뛰어넘는 지식과 경험을 쌓은 통섭형 인재를 키워나갈 방침이다.

 향후 풀어야할 과제도 있다. 인재를 키워놔도 이들이 기여할 자리가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사회에서 제대로 평가하고 대우할 여건조성도 중요하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