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팔리는 메모리 반도체 3개 중 2개는 한국산. 국내에서 반도체 산업이 태동된 지 40여년만의 성적표다. 불혹을 넘긴 우리 반도체 산업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서적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5일 `반도체, 신화를 쓰다
`라는 제목의 산업발전사를 펴냈다. 이 책은 이병철 삼성 회장의 `2.8동경선언`, 대기업들의 반도체 사업 진출과 통합 과정 등 현장감 넘치는 발전사가 총 35개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우리 반도체 산업 성공 스토리와 역사 현장에 있었던 관련 인사 28명의 이야기가 함께 소개돼 반도체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반도체 산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마련됐던 주요 일화를 소개한다.
◇첫 개발, `발표 고민되네`=외국 반도체 업체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조립 하청을 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우리 반도체 산업이 세계 시장에 첫 도전장을 내민 시기는 1983년이다.
삼성반도체통신(현 삼성전자) 연구원들은 그해 5월부터 개발에 착수, 단 6개월 만에 국내 최초로 64KD램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해외 업체로부터 설계도면을 들여왔지만 변변한 제조설비를 갖추지도 못한 상태에서 300여 가지가 넘는 공정과 조립, 검사 기술까지 독자적으로 일궈낸 성과다. 이 기록 뒤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당시 우리 정부와 삼성은 개발 소식을 외부에 공표하는 것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2~3년 앞서 64KD램을 양산한 미국과 일본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견제를 받더라도 세계시장 확보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 그 해 12월 대외적으로 개발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삼성의 세계 진출을 막기 위해 일본 기업들이 덤핑 출하에 나섰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이 일본기업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것이다. 결국 일본 기업들이 반덤핑 관세로 개발 공백이 생기면서 이듬해에 삼성이 개발 7개월 만에 256KD램 양산에 성공, 일본을 따라잡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됐다. 국내 반도체에 `세계 최초 개발`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올림픽과 반도체 무역 흑자=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은 우리 반도체 산업에 또 다른 이정표가 세워진 때다. 매년 무역역조에 시달렸던 반도체 산업이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섰다. D램 품귀 현상에 힘입어 한국산 메모리 반도체 수출이 순풍을 맞으면서 가능했다. 현재까지 이어진 반도체 무역 흑자 행진이 이때 첫 테이프를 끊었다. 삼성과 현대 등 두 대기업이 5000억원이라는 당시로는 상상하기 힘든 무모한 시설투자를 집행한 것이 밑거름이 됐다. 이즈음 국내 반도체 산업을 담당하던 산공부의 실무 사무관이었던 신국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윗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이 산업 흑자 달성에 큰 힘이 됐다. 신 장관은 “각종 통계수치를 조사해보니 흑자 전환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관련 기업들을 적극 지원했으나 당시 주위의 만류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술회했다.
◇“11시에 만나요”=우리 반도체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노력`이다. 반도체 산업 현장 일꾼들의 땀방울이 일궈낸 결실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 초창기 시절, 삼성 반도체 직원들이 매일밤 11시에 만나 회의를 했던 `일레븐 미팅`은 그 노력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는 증거다. 신제품 개발과 생산 인력이 모여 회의를 시작, 매일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교환했다. 이 같은 노력이 지금의 메모리 반도체 강국을 만들어낸 토양이자 비료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