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기술과 법·제도

군에서 행군을 하면 50분 걷고, 10분 쉰다. 이른바 하나공 원칙이다. 군에선 10이라는 숫자를 이렇게 센다. 졸음을 벗 삼아 비몽사몽간 걷는 사이 들리는 `하나공` 외침은 구세주 그 자체였다. 산행과 마찬가지로, 행렬의 후미에서 걷는 이들은 힘들다. 좀 쉬려고 하면 바로 출발 신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술과 법·제도`가 그렇지 않을까. 기술과 법·제도의 경주(행군)가 진행 중이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선 전자가 조금 앞선 느낌이다. 법·제도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기술이 저만치 앞서가면, 법·제도는 추격을 시작한다. 테크놀로지의 선제공격에 국회는 법·제도를 만들어 대응한다.

기술은 태생적으로 국가 통치권 아래 놓이는 것을 거부한다. 법·제도의 사각지대를 파고들거나, 사실상의 표준을 만들어 법·제도를 무력화 시킨다. 여기서부터 국가를 이끌어가는 공무원들의 고민은 시작된다.

가장 널리 퍼졌지만 소중한 개인정보인 주민번호 정책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실명제, 본인확인제, 해킹 사건 등과 맞물려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하나공 휴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잠시 엉덩이를 붙일 틈도 없다.

시장까지 들어오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시장, 기술, 법·제도`라는 3자가 충돌하면 경우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 논란이다. 국가권력과 기술의 싸움은 진행형이지만, 법·제도가 다소 우위를 점한 상태다. 검찰 압수수색 등 강력한 단속에 웹하드와 P2P업체는 변화를 선택 중이다. 그런데 국가도 시장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디지털 음악 이용자들은 징수요율을 인상하겠다는 저작권단체의 입장에 코웃음을 친다. 시장상황과 기술발전을 반영하지 않은 법·제도 변경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다. 웹하드·P2P에서 토렌트 사이트로 건너왔던 이용자들은 최근 모바일 앱으로 이동한다.

스마트폰으로 무료 음악 콘텐츠를 듣는 상황에서 곡당 몇백원씩 지불하려는 소비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창작자들의 의지를 꺾는 불법콘텐츠 유통은 사라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디지털 음악 시장의 현주소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