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아날로그가 그립다

대학 캠퍼스에 하얀 목련이 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느라 손길이 바쁘다. 2012년 캠퍼스 목련은 지겠지만 폰카에 담긴 꽃은 가상 세계에서 오랫동안 떠다닐 것이다. 비록 향기 없는 꽃이겠지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까.

[데스크라인] 아날로그가 그립다

요즘 편지가 있어야 할 우체통엔 담배꽁초와 전단지 같은 쓰레기만 잔뜩 쌓여 있다. 편지함에서 손 글씨로 쓴 편지를 본 기억이 가물거린다. 편지를 메일이나 문자가 대신하고, 편지함은 반갑지 않은 광고지나 세금고지서가 차지한다. 한때는 보낸 편지 답장이 언제 올까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함을 열어보던 시절도 있었다.

옛날 다방에 가면 까맣고 동그란 LP판이 턴테이블에서 돌아가며 지직거리는 옅은 소음과 함께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LP판은 이제 복고풍을 즐기는 일부 마니아에게만 존재한다. 디지털 음원과 CD에 밀린 탓이다.

국내에 LP판 제작공장이 사라진지 오래다. 얼마 전 2AM은 두 번째 미니앨범을 아날로그 정서의 LP판으로도 공개했다. 제작을 해외서 했다.

1960~1970년대. `웃으면 복이 와요` 코미디 프로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모였던 풍경이 떠오른다. 온 동네 사람들이 TV 앞에 모여앉아 `배삼룡이 어떻고, 이미자가 어떻고`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동네 사랑방 감초 역할을 하며 시작된 아날로그 방송이 올해 말 완전히 종료된다. 간단한 장치를 달면 더욱 선명하게 디지털 영상으로 볼 수 있지만, 또 하나의 아날로그 추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

17년 전이다. 디지털 시계로 석기시대였던 1995년 MIT미디어렙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저서를 통해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명의 부정적 측면은 디지털 세상이 갖는 강력한 특징 때문에 부각되지 못할 것이라며 디지털 낙관론을 펼쳤다. 아날로그가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하는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의 예언이 적중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다. 우리의 감성과 정서는 여전히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데 주변은 모두 디지털로 `전환`되고 있는 것 같아서다. 화사한 목련은 디지털 비트가 아닌 기억이라는 저장장치에 기록해 두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언젠가 희미해질 기록이지만 추억은 더 진하게 남지 않겠는가.

약간의 소음이 음악의 일부인양 느껴지는 LP판과 소통이 있었던 아날로그 TV가 더 정겹고, 문자나 카톡보다는 학창시절 연애편지처럼 기다림만으로도 마냥 행복했던 편지의 애절함도 그립다. 그렇다고 아날로그 라이프만을 고집하며 살 수는 없다.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감성을 불어넣어,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행복과 동행할 수 있기를….

정재훈 전국취재팀 부장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