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세계 정보기술(IT) 산업 심장부로 맹위를 떨치는 실리콘밸리에서 요즘 유행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현금을 보유한 잘나가는 기업이 성장세를 유지하거나 특허소송에 대비하기 위해 유망한 기술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 잘나가는 기업에 다니는 임직원이 퇴사하면서 `내가 ○○을 떠난 이유`라는 장문의 글을 남기는 `의례(?)`다.
IT산업에서 기업 M&A는 다반사다. 기술과 시장이 너무도 빠르게 바뀌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구촌을 실시간 공동체로 만든 스마트 혁명 이후 이 흐름은 더 견고해졌다. 신생 벤처기업이 기업공개(IPO)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게 아니라 큰 기업에 인수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도 빨라진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창업 정신과 목표가 흐려진다는 점이다. 대규모 M&A에 성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고 높은 몸값을 받았음에도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다.
여러 `퇴사의 변`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것은 전 구글 엔지니어 제임스 휘태커의 글이었다.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구글을 떠난 이유를 그는 한마디로 `혁신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업무시간의 20%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 프로젝트에 투입해 G메일과 크롬 같은 창의적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20% 정책`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페이스북과의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공유`와 `개방` `착한 구글` 정신은 퇴색하고 수익만 좇는 `광고 회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었다.
그의 판단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지적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최근 미 의회는 IT 기업이 규제기관 대상 로비활동에 투입한 자금을 공개했다. 1분기 기준으로 구글은 503만달러(약 57억원)를 썼다.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비용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통합개인정보보호정책 등이 도마에 오른 탓에 고육지책이었다지만 엄청난 금액에 외신들도 주요 기사로 다뤘다.
벤처정신이 무엇일까 다시금 생각해본다. 현실의 잣대로 판단해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지만 창의와 열정으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심장이 식기 시작한다면 이미 벤처가 아니다.
실리콘밸리 IT 경영자들은 다음 M&A 대상자가 누굴지에 온통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수많은 엔지니어들은 `내가 ○○을 떠난 이유`의 다음 주인공을 점친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애플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