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반도체 업계가 비상이다. 이달 초로 예정된 D램 반도체 업체 엘피다의 2차 입찰에 중국 펀드가 유력 인수 후보로 부상하면서 기술 유출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엘피다 인수전에 미국 TPG캐피털과 함께 참여한 중국 기업재생펀드가 엘피다 인수 후 주력생산기지인 히로시마 공장을 추가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 엘피다 1차 입찰에서 가장 높은 응찰가를 적어낸 미국 마이크론과 미·중연합펀드가 제시한 금액 차이가 크지 않아 2차 응찰에서 미·중 펀드로 낙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중 연합펀드는 엘피다를 인수한 이후 히로시마 공장을 매입해 중국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SMIC에 운영을 위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금융계는 이번에 제기된 중국 펀드의 엘피다와 히로시마 공장 인수 계획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중국 내 PC와 스마트폰 제조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주요 부품인 D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하고 있다.
중국 측의 엘피다 인수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본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기술 격차가 없는 한국과 미국 업계가 인수할 경우, 현재 굳어진 글로벌 반도체 판도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반도체 변방인 중국으로 일본 기술과 생산력이 넘어가면 강력한 경쟁자로 돌변해 자국 내 산업을 크게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는 “미·중 펀드로 낙찰될 경우, 중국으로 기술 유출이 심화되고 일본 내 반도체 산업이 빠르게 붕괴될 수 있다”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일본 업계는 중국 인수설이 확산되자 유일한 일본 업체로 엘피다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도시바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고 있다. 엘피다 인수를 포기할 것으로 보였던 도시바가 또 다른 공동 참여 업체를 물색하는 등 여전히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1차 응찰에 나섰다가 가격 미달로 탈락한 도시바는 SK하이닉스에 공동 입찰을 제안한 데 이어 최근 중동계 파운드리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에도 공동 참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시바가 추진하는 공동 참여도 일본 D램 산업 회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엘피다 인수에 성공할 경우 기술과 생산라인을 분리해 각자 인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엘피다의 기술을 인수하고 도시바는 히로시마 공장과 대만 계열사 생산라인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 연합은 최근 이 같은 계획을 전달했으나 엘피다 경영진은 사업 축소와 고용 승계 차질 등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반해 1차 입찰에서 최고액을 제시한 미국 마이크론은 인수 이후 경영을 통합해 D램 사업을 엘피다에 위탁하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D램 산업의 명맥을 유지하기에는 가장 유리한 방식이지만 결국 미국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게 돼 회생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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