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디지털캐스트는 지난 1997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파일로 음악을 재생하는 MP3플레이어 원천기술을 개발했다. 디지털캐스트는 연구개발과 사업화 비용이 부족해 국내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 처음으로 상용 MP3플레이어 `엠피맨`을 출시했다. 사업 초기 세계적 관심을 받으며 성장했지만 유사제품을 출시한 국내 기업의 특허 무효소송 공격을 받았다. 결국 국내 특허는 권리범위가 축소된 후 특허료 미납으로 권리가 소멸됐다.
국내 업체 사이에 벌어지는 과도한 특허 무효 소송과 미흡한 특허 관리 제도가 우수 기술의 사업화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지재위)가 17일 발표한 `지식재산분쟁에 따른 우수 기술의 사업화 실패 사례 분석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캐스트가 개발한 MP3플레이어 원천특허가 우리 기업 간 분쟁으로 소멸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유럽·중국 등에 등록된 해외 특허는 미국 `특허괴물`에 인수돼 오히려 우리 기업이 라이선스 비를 지불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장조사기관 GMID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0년까지 MP3 기술 적용기기의 우리나라·미국·중국·일본·EU 등 주요국 판매량은 최소 13억대 이상이다. 디지털캐스트의 특허 권리가 계속 유지됐다면 해당 기간 동안 약 27억달러(약 3조1500억원)의 로열티 수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박성준 지재위 지식재산진흥관은 “디지털캐스트 사례는 특허 출원단계서부터 특허 관리와 특허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지식재산(IP)권 생태계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다”며 “특허 무효율이 높고 손해배상액은 낮아 특허 침해 사례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재위는 최근 특허 분쟁 시 특허권 무효율이 70%를 넘는 것으로 추정했다. 특허를 출원하더라도 분쟁에 들어가면 특허 권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특허권 보유자는 특허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권리 범위를 입증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특허권자가 승소하는 비율이 낮다. 지재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허권자 승소율은 25%로 미국(59%), 중국(33%), 독일(33%)등 주요국에 비해 낮다.
손해배상액이 낮아 특허 침해가 잦은 것도 문제다. 지난해 우리나라 특허 소송 평균 배상액은 건당 5000만원 수준이다. 미국의 건당 평균 배상액이 20억원에 달하는 것에 비해 미비하다.
박성준 진흥관은 “낮은 손해배상액 때문에 국내 경쟁업체들이 특허 침해에 대한 부담을 갖지 않는다”며 “1개 특허가 시장에서 통하면 10개 유사업체가 달려든다”고 말했다. 배상액을 지불하고 특허를 침해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란 설명이다.
박성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는 “특허 무효율을 낮추기 위해 우수 특허심사인력을 확충하고 기술 조사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며 “손해배상액 현실화를 위해 3배 배상제도 등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기석 지재위 지식재산전략기획단장은 “특허권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면 뛰어난 기술을 가진 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며 “지식재산 보호체계 정비 등 관련 제도 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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