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허 소송 이기려면 이 사람을 잡아야"

삼성과 애플의 법정 판결 여진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미국 법원에서 승리하려면 배심원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램버스 특허소송에서 이긴 SK하이닉스 김은태 특허그룹장(상무)은 2000년부터 끌어온 소송에서 승리한 비결을 철저한 배심원 설득에서 찾았다.

김은태 SK하이닉스 상무(특허그룹장)
김은태 SK하이닉스 상무(특허그룹장)

특허청과 한국지식재산협회(KINPA) 주최로 28일 서울 노보텔앰배서더호텔에서 열린 `지식재산최고책임자(CIPO) 세미나`에서 김 상무는 “램버스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서 승소하기 위해 배수진을 친다는 생각으로 배심원에게 특허 기술을 이해시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램버스는 2004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램업체가 담합해 램버스 특허 기술인 RD램을 시장에서 퇴출시켰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램버스는 당시 손해배상액으로 40억달러를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배심원 12명 가운데 9명은 `담합을 인정할 수 없다`며 SK하이닉스 손을 들어줬다. 당시 삼성전자도 피소됐지만 램버스와 크로스 라이선스 체결로 합의했다.

김 그룹장은 “당시 항소에 항소가 이어지던 사건이었고 패소 판결이 있었던 만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면서도 “반복된 재판으로 취약점을 보완하고 배심원 선정부터 공판까지 철저히 배심원 위주의 대응전략이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램버스 판결은 3개월간의 공판과 2개월간의 배심원 심의 끝에 이뤄졌다. 김 그룹장은 “위탁 변호사에 소송대리를 맡긴 만큼 변호사 능력에 우려가 있었다”면서 “담당 변호사가 적극적인 소송대리를 하도록 우리나라에서 총지원 공세를 펼쳤다”고 밝혔다. 최근 논란이 인 삼성전자와 애플의 배심원 평결이 22시간 만에 나온 것과 상반됐다. 삼성전자와 다르게 배심원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김 그룹장은 특허침해 소송 시 `폭포효과(Waterfall Effect)`에 대한 견제를 중요하게 봤다. 폭포효과는 높은 곳에 물을 쏟으면 물이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것처럼 한 타깃을 마케팅 목표로 잡으면 효과가 빠르게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김 상무는 “램버스가 폭포효과를 노려 40억달러를 부른 것이 오히려 램버스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며 “특허침해가 없었을 때 해당 분야의 모든 시장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 배심원엔 통하지 않은 듯하다”고 평했다.

공동 피고인과 협력 체제를 유지해 공동 대응에 나선 전략도 주효했다. 그는 “마이크론 등과 공동 대응에 나서고 인텔에서 램버스에 대한 기술지원이 중단되는 상황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승소에 도움을 줬다”고 덧붙였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