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전기요금 도미노

[ET칼럼]전기요금 도미노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엔 상식이고 관행이었지만 이젠 사정이 다르다. 최근 한국전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며 절로 드는 생각이다. 29일에는 한전이 전력거래소와 전력거래가격 결정에 필요한 발전비용을 심의 의결하는 비용평가위원을 상대로 4조400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다. 한전 적자와 전기요금 인상 문제가 소송 사태로 번질 태세다. 예전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이다.

발단은 7·8월에 걸쳐 두 차례 열린 비용평가위원회였다. 한전과 발전회사가 정산조정계수를 놓고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자 전력거래소가 중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지난달에 이어 27일에 열린 비용평가위원회에서도 의결 보류됐고 한전이 소송이라는 초강수를 두게 됐다. 정산조정계수는 발전회사가 한전에 전력을 판매할 때 가격을 결정하는 요율이다. 정산조정계수가 낮아지면 발전회사의 전력판매비도 줄어든다. 적자를 보전하려는 한전은 정산조정계수를 낮추려 하고 발전사는 지키려 한다. 발전회사는 아무리 한전 자회사라지만 시장형 공기업 체제에 들어선 이상 한전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올해부터는 기획재정부에서 경영평가도 받았다. 한전 자회사지만 효율적인 경영을 해야 하는 독립 기업이기 때문이다. 지난봄 만성적자를 이유로 한전이 10개 자회사에서 가져간 주주배당금은 7500억원에 이른다. 한국수력원자력만 해도 적자경영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한전 적자가 발전회사까지 궁지로 모는 형국이다.

비용평가위원회를 앞두고 한전과 발전회사는 동상이몽을 한 것 같다. 발전회사는 상반기에 임시 비용평가위원회에서 한 차례 장산조정계수를 낮췄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4.9%에 그쳤지만 소폭이라도 전기요금이 인상된 만큼 인상분 분배를 기대했을 수도 있다. 반면에 한전은 애초 두 자릿수 요금인상 의지와 달리 한 자릿수 인상률에 머물자 보전 차원의 조정을 기대했다. 그러나 27일 열린 비용평가위원회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 달로 미뤄졌다.

최근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이 올해 추가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연말께 추가 요금인상을 계획하던 한전에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다. 여기에 정산조정계수까지 마음대로 낮추지 못하자 비용평가위원회의 불합리한 정산조정계수 업무처리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소송에 나섰다. 발전회사가 모기업인 한전에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나, 한전이 손실보전을 위해서라면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전기요금 인상이 한전의 적자보전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건전한 긴장관계를 벗어난 한전과 발전회사의 대립각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