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72] 공정위, IT부문 직접 규제 <2005년 5월>

2005년 정보통신부 존립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IT부문 규제에 나서면서 제기된 공정위의 역할론은 지금까지 IT업계의 치열한 논쟁거리다.

당시 공정위는 통신사업자들에 요금 담합을 이유로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통신위원회와 이중규제 논란을 야기했다. KT에 1000억원이 넘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통신업계의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KT·SK텔레콤 등 통신사업자는 주무부처인 정통부를 비롯해 공정위·국회 등 대외협력 부문을 강화하며 규제기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같은 해 공정위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330억원의 과징금과 함께 시정조치 명령을 내리면서 규제 범위는 IT산업 전체로 확산됐다.

2005년 12월 7일 강철규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서동원 공정위 주심위원이 정부 과천청사 브리핑룸에서 MS의 컴퓨터 프로그램 `끼워팔기`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05년 12월 7일 강철규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오른쪽)과 서동원 공정위 주심위원이 정부 과천청사 브리핑룸에서 MS의 컴퓨터 프로그램 `끼워팔기`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05년 5월 공정위가 KT에 단일 기업으로는 사상 최대인 1159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나로텔레콤과 데이콤에도 각각 24억원과 14억8000만원의 과징금이 내려졌다. 공정위가 시내전화와 PC방 인터넷전용회선의 가격을 담합한 KT·하나로텔레콤·데이콤 3개 업체에 제재를 단행한 것이다. KT는 시내전화 1130억원, PC방 인터넷전용 회선 29억7000만원 등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하나로텔레콤은 시내전화 21억5000만원, PC방 인터넷전용회선 2억5000만원 등 모두 24억원의 과징금을 받았고, PC방 인터넷전용회선 부문에서 가격을 담합한 데이콤은 14억8000만원 과징금을 내게 됐다.

당시 KT와 하나로텔레콤은 KT가 매년 1∼2%의 보편적 서비스인 시내전화 시장점유율을 내주는 대신, 하나로텔레콤의 요금을 인상하기로 담합한 혐의내용을 상당부분 인정했다. PC방 인터넷전용회선 업체들은 종합유선방송업체들이 통신사업자로부터 싸게 빌린 전용회선을 이용해 시장을 잠식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전용회선 요금인하 경쟁을 자제하기로 담합한 혐의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KT 등 통신사업자들은 이 같은 공정위의 조치에 반발,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맞대응에 나섰다. 이에 공정위는 명백한 담합 증거를 제시하며 KT를 압박했고 KT는 정부의 행정지도에 의한 것이었음을 강조했다. 이후 `통신산업의 특수성`(KT·정통부)과 `명백한 불법 담합`(공정위)의 팽팽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행정지도` 유효성 여부 `논란`=정통부의 행정지도는 어디까지 유효한가. KT는 정통부가 지난 2002년 11월 KT와 하나로통신(현 하나로텔레콤)에 시내전화시장 안정화 조치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배경에는 하나로텔레콤의 경영위기가 깔려 있었다. 정통부가 후발사업자의 시장점유율(미국 10%, 호주 19%)을 근거로 하나로통신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하나로통신은 시내전화 요금을 현실화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정통부가 존재하는 이상 KT와 하나로텔레콤 간 요금 담합은 정통부의 행정지시가 직접 원인이었다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이 같은 주장을 일부만 인정했다. 2002년 11월 정통부의 행정지도가 있었지만 이것이 2003년 6월 23일 이뤄진 담합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결국 공정위와 KT가 해석하는 `정통부의 행정지도`는 통신사업 특성상 정통부라는 정부 규제기구의 행정지도를 `유효하고 강력한 지시행위(KT)`로 판단하는지 `법적 근거 없는 권고(공정위)`로 해석하는지의 차이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2005년 5월 25일 허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경쟁국장이 브리핑실에서 KT와 하나로텔레콤의 가격 담합에 관한 발표를 하고 있다.
2005년 5월 25일 허선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경쟁국장이 브리핑실에서 KT와 하나로텔레콤의 가격 담합에 관한 발표를 하고 있다.

◇자진 담합인가, 아닌가=공정위는 2005년 5월 26일 브리핑에서 KT가 2003년 5월 작성한 `전화부문 HTI와 공정경쟁 협상관련 보고`와 하나로통신 전화사업팀이 2003년 11월 10일 작성한 `KT 공조 추진현황 및 향후 대응방안`을 `명백한 증거`라며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KT는 △번호이동성 시행 계기 KT 시장 효율적 방어 △정부의 후발사업자 육성 대책에 대한 사전 대비 △LM 시장 개방 대비 요금조정 필요 △전화시장 규모 감소 최소화 등을 제시하며 담합을 주도했다. 특히 KT는 2007년까지 시내전화 시장 점유율 1.2%씩 이관하면 2007년 하나로텔레콤의 점유율을 10%로 묶을 수 있지만 당시 요금을 그대로 하면 점유율이 13%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KT는 담합에 따른 이익을 약 4000억원으로 계산했다. 하나로통신은 “KT와의 공조 파기는 부정적이며 일정기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고 단계별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최종 결론으로 제시했다.

공정위는 이 보고서에 의거, KT가 주도하고 하나로텔레콤이 따라간 전형적인 담합이라고 결정했으며 이는 공정거래법 19조 1항에 의거해 합의가 입증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KT 등 통신사들은 △행정지도 여부 △통신시장의 특성 △하나로텔레콤의 부도위기 등의 요인이 담합 사실을 뒤집지 못하고 규제에 따라야 했다.

◇외산 소프트웨어 업체로 규제 범위 확대=2005년 12월 공정위는 미국 MS 본사 및 한국 MS에 프로그램 분리명령, 경쟁제품 탑재 및 윈도 메신저와 MSN메신저 간 상호연동금지 등의 시정명령과 함께 279억2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과징금은 MS 본사가 229억2000만원, 한국MS가 50억원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대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등 시정명령에 MS는 “승복할 수 없다”면서 “명령 중지 요청과 함께 (법원에) 항소하겠다”며 맞대응에 나섰다.

공정위는 △MS가 독점력을 갖고 있는 PC서버 운용체계(OS)에서 윈도 및 미디어서버 프로그램을 결합해 판매한 행위 △MS가 독점하고 있는 PC 운용체계에 윈도 미디어플레이어 프로그램을 결합해 판매한 행위 △MS가 독점하고 있는 PC 운용체계에 메신저 프로그램을 결합해 판매한 행위 등을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로 지적했다.

강철규 당시 공정위원장은 “MS는 PC 서버 운용체계와 미디어 서버 등 결합판매를 통해 응용프로그램 시장에 진입장벽을 형성, 독점력을 공고히 하는 한편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했다”고 시정명령 이유를 밝혔다.

공정위는 윈도 미디어서버 결합판매와 관련해 시정명령일부터 180일 이후에는 윈도 서버 운용체계서 윈도 미디어서버 프로그램을 분리, 판매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또 윈도 미디어플레이어 및 메신저 결합판매와 관련해서는 180일 이내 두 가지 윈도 PC 운용체계를 공급하며 △윈도 PC 운용체계에서 윈도 미디어플레이어와 메신저를 분리한 버전을 공급할 것(분리된 버전) △윈도 PC 운용체계에 경쟁 미디어플레이어와 메신저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링크가 포함된 `미디어플레이어 센터`와 메신저센터를 설치하고 소비자가 모든 경쟁제품을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할 것(탑재된 버전) 등을 명령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크게 반발하며 공정위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결국 항소를 취하하며 공정위 판결에 승복했다.

당장 소비자나 산업적 측면에서 불편과 혼란이 예상되는 사건이었다. 더욱이 국내 PC 제조업체와 소프트웨어(SW) 업체 그리고 PC 사용자들에게도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독점 환경을 깨고 새로운 판을 만들어 기술 종속을 벗어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이중규제 찬반 논쟁 과열=업계에서 제기한 이중규제 문제는 정통부·통신위원회·공정위 모두 “규제가 따로 존재한다”는 주장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정위와 통신위의 업무 분장에 의거 △정통부는 통신시장 고유의 전문부문을 규제(상호접속, 약관 위반, 시장 혼탁 등)하고 △공정위는 부당한 공동행위 일반 규제를 명확히 했다는 것이다.

이중규제 문제에 대해 허선 공정위 당시 경쟁국장은 “통신 규제는 정통부만 하란 말인가”라고 반발했다. 김인수 당시 통신위 국장도 “통신위는 공정한 통신 시장경쟁 환경을 위해 감시하고 유도할 뿐 독점이나 담합을 감시하지 않는다”고 말해 이중규제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통신업계는 통신위와 공정위가 번갈아가며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사실상 이중규제나 다름없다며 공정위가 정유사 담합에는 관대하면서 통신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통신사업자들에 내린 사상 최대의 과징금 판정에 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가 상당수 원인을 제공했음이 밝혀지면서 그동안 통신시장의 육성과 발전을 이끌어왔던 경쟁활성화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 정책이 독점사업자의 불공정행위 감시에 그치지 않고, 후발사업자 보호를 통한 경쟁 활성화와 산업 육성, 나아가 소비자 후생 증대까지 이어지면서 행정력의 권한이 어디까지 미쳐야하는지의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진대제 당시 정통부 장관은 “행정지도를 했다. 그러나 담합은 시키지 않았다”면서 “앞으로도 경쟁 활성화 정책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규제와 육성을 넘나들면서 시장개입은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업자들은 `이중 잣대에 의한 과잉 규제`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KT는 “시장경쟁을 활성화하기 위해 후발사업자인 하나로텔레콤의 부도를 막을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정부의 `행정지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하나로를 살리기 위해 가격이나 시장점유율을 임의로 조정하라는 말로밖에 해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산업 육성권과 규제권을 함께 쥔 정부와 사업자가 평소 `암묵적 합의`로 정책을 집행하는 구조적 모순이 이 같은 사태를 불러왔다고 해석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