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사건_060] IT로 빛난 한일 월드컵 <2002년 6월>

2002년 5월 31일 한일 월드컵 개막식이 열린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세계 축구팬 수십억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휴대폰을 든 `디지털 메신저` 10여명이 관람석을 돌며 관객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100대 사건_060] IT로 빛난 한일 월드컵 <2002년 6월>

임형종 KT상무
임형종 KT상무

당시 비동기 IMT2000으로 불렸던 3세대(G) 광대역 코드분할다중접속(WCDMA) 서비스가 국내에 첫선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 전통의상을 입고 초립을 쓴 디지털 메신저 열 명이 IMT 단말기로 통화하면서 경기장 상공에서 와이어를 타고 하강하는 모습이 전광판에 나타났다. 이들은 비동기식 IMT2000 단말기로 관객과 통화했다. 그 순간은 바로 우리나라 이동통신 기술이 한 차원 도약해 전 세계를 주도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출발선이었다. 이 장면은 월드컵 열기를 타고 전 세계에 보도됐다. 우리 정보통신산업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통신산업이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다.

2002 한일월드컵 오프닝 행사를 위해서 월드컵사업팀은 세계적으로 나오지 않은 기술을 고민했다. 그래서 IT강국 위상에 맞게 2세대(2G)가 아닌 3세대(3G)서비스를 활용한 이벤트를 구상하게 됐다. 이 행사를 위해 KT아이컴(현 KT) 직원들은 두 달 이상 밤잠을 자지 않으면서 일했다. `비동기 IMT2000 월드컵 시연`은 KT그룹 IMT사업 추진본부 시절부터 계획돼 있었지만 시스템 네트워크 구축, 단말기 개발조달 계획, 서비스 방향도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드컵사업팀은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상암 경기장에서 밧줄로 뛰어내리는 퍼포먼스를 위해서 `디지털 메신저`들은 두 달 동안 `고공낙하` 연습을 했다. 임형종 한일월드컵사업팀장은 “시연행사가 끝난 후 월드컵사업팀은 긴장이 풀려 축구경기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드컵 기간 내내 외국 관광객과 우리 국민은 전국 10개 도시에서 직접 휴대폰으로 영상통화를 하고 동영상과 문자·음악을 혼합한 멀티미디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단말기에서 직접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이동통신 서비스를 마음껏 체험했다. IMT 시연장을 방문한 이들은 발전한 우리나라 기술에 놀랐다. 특히 인터넷 콘텐츠 접속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컬러코드 서비스에 관심이 높았다. 외신도 우리나라 통신기술에 관심을 보였다. 영국의 BBC에서는 우리 통신기술이 자국 최고의 선수인 베컴의 인기를 뛰어넘는다는 보도를 했다.

IT월드컵 대미를 장식한 것은 결승전을 목전에 둔 시점에 지구촌 처음으로 성사된 국제 영상통화 서비스다.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이 이동전화 단말기를 통해 국제 영상통화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는 점이다. 비동기 IMT2000 서비스의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면서도 그 당시 해외 정보통신기업도 못했던 국제 간 영상 로밍 서비스를 우리 기술로 구현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전에 나선 붉은악마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응원전에 나선 붉은악마들

2002 한일 IT월드컵은 국내 서비스와 국내 장비기술로 이뤄졌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통신사업자의 확고한 추진의지, 그리고 장비 제조업체의 부단한 기술개발 투자의 결과였다.

세계 최초로 일체형 IMT 단말기를 사용했다는 점도 큰 의미다. 일본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영상전화용 단말기와 기타 서비스용 단말기를 분리했다. 고객이 모든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할 때는 두 대의 단말기를 구입해야 했다. 우리나라는 하나의 단말기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 우리나라 이동통신기술이 기술적으로 한 단계 앞서가고 있었다.

IMT2000 시연서비스로 최소 6개월 이상의 기술개발기간 단축효과를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 대한 투자 및 기술개발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앞선 기술을 선보임으로써 많은 나라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2세대 이동통신에서뿐만 아니라 3세대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우리나라가 정보통신산업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2002 한일월드컵 때 IT 강국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IT업계와 정통부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IT 홍보에 큰 비중을 뒀다.

한일월드컵 때 보여준 놀라운 기술적 성공과 달리 시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통신사업자 후속 투자는 더뎠다. IMT2000 서비스는 2002년 월드컵 무렵에 상용화될 계획이었으나 장비와 단말기 개발이 늦어지고 시장성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지체됐다. 특히 IMT2000 사업자의 대주주와 관계사들은 WCDMA 방식이 CDMA2000 방식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동기식으로 전환을 요구해 문제가 됐다. 이런 이유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특별상임위를 열기도 했다.

WCDMA 상용서비스는 2003년 말에나 시작됐다. 2005년 6월 말 WCDMA 가입자는 고작 3000여명에 불과했다. KT아이컴은 지난 2000년 12월 15일 WCDMA 사업자로 선정된 후 단 한 번의 서비스도 하지 않은 채 KTF에 합병되면서 사라졌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지난 2000년 이후 국내 통신업계를 뜨겁게 달궜던 비동기식(WCDMA) IMT2000 사업자가 없어진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전자제품 판매 특수로 이어졌다. 한 전자유통업체에서는 축구대표선수단과 동명인 고객에게 할인혜택을 주는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전자제품 판매 특수로 이어졌다. 한 전자유통업체에서는 축구대표선수단과 동명인 고객에게 할인혜택을 주는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 임형종 KT아이컴 한일월드컵사업팀장(현 KT 상무)

“무식해서 일을 냈습니다. 만약에 그 당시 너무 많이 알았더라면 `한일월드컵 비동기 IMT2000` 시연을 성공리에 마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임형종 KT 상무는 지금 생각하면 한일월드컵 시연은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2002 한일월드컵 개최 이전만 해도 비동기식(WCDMA) IMT2000은 선진 이동통신사 중심지인 유럽에서도 아직 개발단계에 있는 기술방식이었다. 그 당시 동기식(CDMA2000) 기술만이 유일했던 상황에서 KT아이컴(현 KT)만이 비동기 IMT2000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완성된 기술도 없었지만 KT아이컴의 의지와 한일월드컵 시연행사로 우리 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겠다는 정부 뜻이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거의 `백지`상태에서 비동기 IMT2000 시연 준비가 시작됐다. 임형종 KT 상무는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월드컵사업팀장을 맡았다. 임 상무는 한일월드컵 개막식 `비동기 IMT2000 월드컵 시연` 담당자였다.

임 상무는 시연 퍼포먼스를 준비할수록 부담감은 커졌다고 고백했다.

“KT아이컴은 비동기 IMT2000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을 꿈꿨기에 월드컵시연은 상용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세계 최초의 시도인 만큼 모든 것을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해야 했습니다. 그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월드컵 사업팀은 성공적인 시연을 위해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관련부서와의 마라톤 회의, 전담반을 운영했다. `월드컵 시연서비스 추진계획`을 수립하고 서비스 제공기준과 지역, 장비구축, 설계, 단말기 확보방안, 프로모션 실행 계획 등 구체적인 큰 그림도 그렸다.

“KT아이컴은 전사적인 시연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장비, 시스템, 단말기, 콘텐츠 등 다양한 분야의 개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장비 업체 선정을 위해 하룻밤에 캐비닛 4개 분량의 서류를 읽었습니다. 이런 과정 덕분에 기술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월드컵사업팀은 한일월드컵 전날까지 안심할 수 없었다. 시연 때 디지털 메신저들이 휴대폰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배터리 수명이 20분이면 끝나기 때문에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임 상무는 “배터리 수명이 짧은 것이 제일 큰 문제”라며 “디지털 메신저들은 두 달간 배터리를 허리띠처럼 차고 갈아끼우는 연습과 상암 경기장에서 고공낙하 연습을 매일같이 했다”고 말했다.

임 상무는 시연이 대성공이었다고 밝혔다.

“일 년간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성공적인 시연 후 월드컵사업팀은 긴장이 순식간에 풀렸습니다. 축구경기를 제대로 본 직원이 없었습니다.”

KT아이컴은 3세대 이동통신을 대표해 월드컵 개막식 문화행사와 주요 개최도시 시연행사와 한일 간 국제 영상통화 로밍을 성공적으로 시연했다. KT아이컴의 무모한 도전은 그 당시 꿈의 이동통신으로 불리는 WCDMA IMT2000 기술을 국내외에 성공적으로 선보이는 계기가 됐다.


[표] 2002 한일월드컵 시연서비스 추진 일지

(자료: KT)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