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경기 순환 주기를 일컫는 `실리콘 사이클(Silicon Cycle)`은 1970년대 이후 반도체 산업을 조망하는 유효한 지표로서 그 자리를 지켜왔다. 통상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실리콘 사이클은 반도체 산업의 성장성과 예측 가능성을 제시하고 전후방 업체가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D램 시장은 실리콘 사이클의 대표 품목이다.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처리 기기 수요를 좌우하는 미국의 경기 부양책이 대선이 치러지는 4년 주기로 강화되면서 실리콘 사이클은 정점을 찍는다. 이는 공교롭게 올림픽이 치러지는 해와 맞물려왔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실리콘 사이클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실리콘 사이클이 짧아지고 호·불황의 진폭도 크게 줄었다. 1년 주기로 상반기에는 부품 수요가 줄고 하반기에는 대체로 매출을 회복하는 `상저하고` 현상도 희박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불확실성의 시대다.
이 같은 분위기는 국산 부품소재 및 장비 업계의 우려에서도 곳곳에서 묻어난다. 최근 국내 소자 대기업의 구매 담당자들은 협력업체들에 `(어떻게든) 살아남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올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규모의 반도체 설비투자를 단행하고 SK하이닉스도 투자를 크게 늘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1년 안에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셈이다.
우려되는 것은 중소 협력업체들이 냉탕을 버틸 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국산 장비업계에서 자취를 감출 업체가 조만간 무더기로 나올 것이라는 괴담까지 번진다. 자칫 힘겹게 명맥을 이어온 반도체 후방산업 기반이 무너질까 우려스럽다.
해답은 뭉치는 것이다. 장비업체 간 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키우고 공동 연구개발 등으로 맷집을 키워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 과감한 연구개발 지원과 세제 혜택 등으로 후방 산업을 지키는 것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이어가기 위한 가장 시급한 과제다.
양종석 소재부품산업부 차장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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