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복제와 표절, 모방의 경계선

[데스크라인]복제와 표절, 모방의 경계선

얼마 전 한 기업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소프트웨어(SW) 개발사로부터 불법복제 정황을 포착했으니 벌금을 내고 정품을 구입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가뜩이나 회사도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해당 기업인 처지에선 답답한 노릇이지만 딱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우리나라 SW 불법복제율은 40%로 추정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7%)에 비하면 높은 편이지만, 한때 불법복제율이 70% 수준이었음을 생각하면 정화가 많이 됐다.

예전엔 불법 SW 단속이 뜨면 회사 PC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단속 정보를 미리 알고 아예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SW 불법복제는 근절돼야 한다. 저작물 침해의 대가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복제와 비슷한 맥락으로 분류되는 표절과 모방으로 건너오면 뭔가 모호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논문 표절은 선거철이나 인사청문회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오래 끌지는 못한다. `표절이다`와 `아니다`를 놓고 학자들 간 이견이 많지만, 실제로 표절에 가깝다 해도 관심의 수명은 짧다. 사람들이 집단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니라 워낙 많이 듣다 보니 `논문 표절쯤이야` 한다. 본질적으로 표절은 여전히 명백한 불법이지만 사람들이 둔감해진 탓이다.

연예계 표절도 마찬가지다. 가수 싸이가 김장훈의 공연을 표절했다는 논란도 법정에 가지 않고 감정싸움에서 시작해 화해하는 정도로 마무리된 것 같다. 노래 표절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해당 가수는 무대에 다시 오른다.

문학계는 표절과 모방을 새로운 창작을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자신의 독창적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훌륭한 작가의 작품과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정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표절 사례도 있다.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을 두고 한 말이다. 두 글로벌 기업의 표절 논쟁은 스마트폰 시장 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한 네티즌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소송을 빗대 “포드가 운전석 앞에 운전대를 부착하는 아이디어를 쉐보레가 훔쳤다며 소송한 꼴”이라고 했다. 공감하지만 사활이 걸린 기업 간 특허 소송이 결코 `그럴 수 있지` 하는 정서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모방이 창조를 위해 쓰이지 않고 모방에 그치면 표절이다. 저작권자의 창작 의욕을 꺾는 명백한 표절과 불법복제는 근절돼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논란이 많은 것은 창작과 표절, 복제, 모방의 경계선이 그만큼 모호하기 때문이다.

정재훈 전국취재 부장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