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공계 출신 첫 대통령이다. 최근 중소기업 CEO를 만나 얘기한 `중소기업 대통령`론 못지않게 `과학기술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박 당선인은 공약으로 창조경제를 기반으로 국가연구개발 혁신시스템을 다시 구축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과학기술을 국민 모두에 혜택 주는 `국민행복기술`로 승화시키겠다는 전제아래 정책의 포커스를 맞춰놨다. 여느 대통령과는 달리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박 당선자의 생각의 일단을 읽어볼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분야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그만큼 풀어야할 숙제가 많고,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박 당선자는 우선 과학기술계의 한축을 구성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가 지난 5년간 거의 한발짝도 못나간 이유부터 찾아야 한다. 기초과학 중심으로 과제가 진행되는 대학과는 달리 출연연은 현재 목적 자체가 애매하게 뒤섞여 있는 상황이다.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이를 한창 개량해 쓰던 1960~1970년대와 반도체·철강·조선·자동차 등 수출주력산업을 키우던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출연연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주도했다.
출연연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기업의 기술개발 역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부터다. 정부의 간섭에다 뭉치기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과학기술인들의 `습성` 때문에 제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다. 정부 또한 출연연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부분적인 땜질식 처방만 해왔을 뿐 새로운 패러다임을 과감히 도입하는데는 주저했다.
과학기술계의 예산편성권을 무기로 컨트롤 타워 역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말기에 이르러 발톱빠진 `종이 호랑이` 신세로 전락했다.
과학벨트 조성사업도 예산부족으로 지지부진했다. 기초과학연구원과 출연연구기관 간 애매한 성격 규정도 혼란스런 상태 그대로다. 기초과학을 육성한다며 전국에 가속기 건립 그림만 그려 놨다. 출연연 조직은 강소형(임무연계)으로 만들다 말았다.
현장감이 떨어지는 섣부른 공약도 눈에 띤다. 목표보다 5년 앞당겨 오는 2020년까지 달착륙선을 달에 보내겠다는 박 당선인의 공약에 대해 현장 연구원들의 목소리는 냉랭하기 그지없다. 75톤 액체엔진을 만들어 놓고도 연소시험동이 없어 검증을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2021년까지 3단형 한국형발사체의 시험발사를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하물며 2020년까지 우리가 만든 발사체로 달에 착륙선을 보낸다는 것이 가능할까?
박 당선인은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과학기술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과학기술계는 이제 그 구체적인 방안을 듣고 싶어한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