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이슈]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기술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설비를 구입해야 한다. 제조업의 기본 법칙이다. 기업이 경쟁사 설비투자 계획에 주목하는 것도 시장 총 생산규모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 설비투자 없이도 매년 30% 가량 생산량이 늘어나는 분야가 있어 화제다. 바로 반도체다. 회로를 더 작게 집적할수록 이와 비례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량은 늘어난다. 웨이퍼 하나에서 만들 수 있는 반도체 칩수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머징 이슈]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기술

반도체 산업의 속성을 분석해 인텔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는 반도체에 저장되는 데이터 양은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57`을 제시했다. 무어의 법칙은 65년 이후 반도체 기술 발전의 기본 프레임이 됐다.

리소그래피는 반도체 미세 공정을 가능케 하는 핵심 기술이다. 회로도가 그려진 마스크 패턴판에 빛을 통과시키면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이 묻어 있는 웨이퍼에 축소된 회로 패턴이 새겨지는 원리다. 보통 리소그래피는 사진촬영에 비유한다. 사진이 피사체를 카메라 이미지센서에 복사하는 것처럼 리소그래피는 반도체 설계도를 웨이퍼 위 포토레지스트에 찍어낸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고성능 카메라가 필요하듯 좋은 반도체 칩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성능 스캐너가 필요하다. 스캐너 성능이 좋으면 더 미세한 반도체 회로 패턴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캐너 성능을 높이기 위해 장비업체는 특정한 파장의 광원을 사용한다. 포토리소그래피 기술에 사용되는 광원은 G라인(436nm), i라인(365nm), KrF(243nm)를 거쳐 현재 ArF(193nm)까지 발전됐다. 파장이 짧을수록 더 미세한 패턴을 구현할 수 있다.

ArF보다 파장이 짧고 안정적인 광원 개발은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이슈다. ArF이머전 기술을 활용한 반도체 미세 공정이 한계에 봉착한 탓이다. D램은 20나노 중반, 낸드 플래시는 10나노 후반대에서 미세회로 기술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무어의 법칙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차세대 노광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반도체 업계는 엑스레이·나노 임플란트·E빔 리소그래피 등 수많은 광원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엑스레이는 멤브레인 마스크 제작이 어려워 실패했고, 나노임플란트와 E빔은 균일하지 않고 낮은 출력 탓에 상용화가 지지부진하다.

ArF 이후 시대를 책임질 광원으로 가장 유력한 것은 13.5nm 파장의 극자외선(EUV)이다. 세계 1위 반도체 리소그래피 장비 업체인 ASML은 EUV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은 ASML과 손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7월 인텔은 ASML에 33억유로(약 4조6000억원)를 투자했다. ASML 지분 15%를 확보하고, 8억유로는 공동 R&D 비용으로 쓸 계획이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도 지난해 8월 ASML에 11억유로(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ASML 지분 5%를 확보하고, 2억7000만유로를 공동 R&D에 쓰기로 했다. 삼성전자도 뒤따라 ASML에 7억7900만유로(1조1000억원)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ASML 지분 3%를 인수하고, 공동 R&D비용으로 2억7600만유로를 투입하기로 했다. ASML은 반도체 빅3 기업으로부터 총 51억8000만유로(약 7조2000억원) 투자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EUV 리소그래피가 넘어야할 기술 장벽도 높다. EUV는 대부분의 물질(기체 포함)에 흡수되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기존 투과형 렌즈 대신 반사형 다층박막 거울을 사용해야 한다. 광원 효율성도 문제다. 다층박막 거울의 최대 반사 효율은 70% 수준이다. EUV 광원이 스캐너 반사광학계와 다층박막 마스크를 통과해 웨이퍼 표면에 도달하면 이미 엄청난 에너지 손실이 일어난다.

EUV가 다른 차세대 노광 기술에 비해 유리한 점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EUV 노광장비 광원은 출력이 약해 상용화되기 어렵다. ASML은 고출력 레이저 소스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엑시머레이저 생산 업체인 사이머를 25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팀장은 “EUV 광원은 지난 3년간 20배 이상 출력이 강해졌지만, 상용화 단계까지 가려면 지금보다 20배 이상 더 강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UV 장비의 비싼 가격도 문제다. ArF이머전 장비는 7000만달러 수준이지만, EUV장비는 1억5000만 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된다. 향후 반도체 업체들의 신규라인 투자 규모는 과거보다 굉장히 큰 폭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로직팹은 60억달러 이상, D램 팹은 70억달러 이상, 낸드 플래시 팹은 90억 달러 이상 든다. EUV 장비가 적용되면 어떤 팹이든 최소 100억달러 이상 소요된다. 100억달러 수준의 자금을 투입해 팹을 지을 수 있는 업체는 세계에서 삼성전자·인텔·TSMC 세 회사 정도 밖에 없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