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끊이지 않는다. 어제 오후 나타난 햇빛이 오랜만에 얼굴 보는 친구로 느껴졌을 정도다.
그래도 어찌됐든 여름 휴가철은 다가왔다. 날씨 탓에 휴가 분위기는 나지 않지만 다음주부터는 휴가 행렬이 시작될테다. 관가도 마찬가지다. 부처 공무원들도 저마다 휴가 계획을 세우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모두가 부담없이 여름 휴가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간부급 공무원들은 좀 다르다. 예전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지만 상하좌우 분위기를 살피는 것은 여전하다.
모 부처의 국장급 간부 A는 이달 초 때이른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20여년 공직 생활에서 터득한 `경험칙`이 작용했다. 갈 수 있을 때 얼른 다녀와야 휴가를 못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가 휴가를 다녀온 이후로 예정됐던 주요 행사가 갑작스레 연기됐다. 대체로 예정된 행사가 밀리면 휴가는 가기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또다른 간부 B는 웬지 모르게 불안하다. 8월 초중순으로 휴가를 계획 중인 B는 제대로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휴가 때 어떤 돌발상황이 생길지 알 수 없다. 예전에도 몇번 휴가를 망친 경험이 있다. B는 휴가 중 하루 정도는 출근한다고 이미 한 수 접은 상태다.
과거에는 집에 있으면 덥기만 하고, 냉방 잘되는 시원한 사무실로 나오는 게 더 낫다고 위안을 삼았지만 옛말이다. 전력난 때문에 에너지 절감을 솔선수범해야 하는 부처 청사는 곧 찜통이 될 판이다. 공무원들은 장마가 끝난 후 기승을 부릴 무더위가 벌써부터 두렵다.
최근 청와대가 재검증하는 공공기관장 인사에 `반(半) 관료` 내지 `반(反) 관료` 정서가 있다는 소문이다. 맘 편하게 휴가도 못가고, 사무실은 더운데 사회에서 바라보는 분위기는 좋지 않고. `공무원은 사양산업`이라는 누군가의 우스개소리처럼 이래저래 공무원하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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