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5500만원이면 민심이 돌아설까

[데스크라인]5500만원이면 민심이 돌아설까

간당간당 하루살이 전력 탓에 33도가 넘는 폭염에도 에어컨 켜기가 미안한 13일 오후. 사촌들과 수다를 나누는 카톡 방에 두 장의 사진이 연이어 올라왔다.

하나는 세종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외사촌이 에어컨은 물론 형광등까지 끄고 있는 사무실 모습이었고, 또 하나는 통영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종사촌의 대통령 직촬 인증샷이었다.

사흘 고비를 우선 견뎌보자는 정부 방침을 앞장서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형광등까지 끈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었다. 일이 제대로 될까. 외사촌은 “컴퓨터 전원을 끄라고 하면 차라리 놀기라도 하지”하며 쓴 웃음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을 대답으로 보내왔다.

지속되는 가뭄에 적조가 심해지면서 한마디로 `붉은 눈물 바다`가 된 통영 현장을 이날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했다. 오후 거제에서 열리는 김좌진함 진수식 참석에 앞선 일정이긴 했지만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위기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어민들과 현지 관계자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이어진 중앙시장 방문에서는 대통령을 보기 위한 인파가 몰려들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던 모양이다. 그도그럴 것이 통영에 현직 대통령이 방문한 것도 이례적인데다 지난해 12월 대선 이후 박 대통령이 국민들이 모여 있는 민생 현장을 찾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최근 여러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일까. 여러 현장에서 고통받고 있는 국민을 어루만지는 대통령의 모습이 언론에 나길 원했다면 나쁘지 않았던 선택처럼 보였다.

민심이 좀 나아질 것 같냐는 질문에 이종사촌은 “적조는 하나님도 해결 못하는 문제”라며 “어민들이 더 이상 굴이나 김 양식업을 안해도 먹고 살만한 대책 없이는 위로가 안된다”고 입바른 소리를 해댔다.

다른 형제들의 화제는 세금에 모아졌다. 유리봉투를 가진 월급쟁이들이 대다수여서 5500만원이라는 숫자에 일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나 전세 대란과 월세 전환 얘기가 나오자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아무래도 지금 국민들이 이 정부에 느끼는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닿은 듯하다. 날도 덥고 먹고 살기도 팍팍하고 더위 지나 명절 쇠고 전세 구해 이사할 일도 난감한데, 이 와중에 세제 개편한다고 내놓은 안이 그 모양이니….

내부 보고는 물론, 이미 재가도 받았을 만한 내용을 대통령이 `원점 재검토`를 언급하자마자 부총리가 기자회견까지 자처해 스스로 만든 안을 뒤집는 이 형국을 과연 국민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450만원이 5500만원이 됐다고 해서 그 의도가, 그 생각주머니, 그 마음 씀씀이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 대통령이 `커밍아웃`을 해야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대선 당시 내놓았던 복지 공약의 부실을 인정하고, 왜 증세가 필요한 지, 거둬들인 세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국민 앞에 솔직히 밝히고 설득하라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이 떴다`라는 인터넷 동영상 시리즈가 있었다. 지지도를 올리기 위해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찾은 모습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SNS를 통해 확산시켰다. 그 결과? 누구보다 박 대통령이 잘 알 것 아닌가. 민심을 제대로 봐야할 이유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