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시장의 급격한 침체에도 꿈쩍 않던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중국 내수 시장 둔화 우려로 급락했다.
중국 정부가 최근 공공 지출을 줄이는 동시에 유동성 관리에 나서면서 급성장을 거듭하던 중저가 스마트 기기 등 전자제품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올 상반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떠받쳐온 제조·유통 업체들이 추가 구매를 꺼리면서 당분간 D램·모바일 D램·낸드 플래시 가격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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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업계에 따르면 7월 하순 64Gb 낸드 플래시 고정거래가격은 초순 대비 9.1% 하락한 5.02달러에 그쳤다. 32Gb 고정거래가격은 6.2% 내린 3.36달러로 추산된다. D램 현물가격도 급락했다. 4GB 모듈 D램 현물가격이 26달러를 기록해 고정거래가격 27.25달러를 밑도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D램 고정거래가격이 하락세로 반전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갑자기 고꾸라진 것은 중국 내수 시장 둔화 우려 때문이다. 중국 내수 시장은 이미 세계 스마트 기기 수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중저가 스마트 기기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은 지대하다. 얼마 전까지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중국 스마트폰 수요를 4억대까지 추산했다. 그러나 지금은 10~20% 하향 조정하는 분위기다. 중국 중저가 스마트패드 시장도 하반기부터 성장 곡선이 완만해질 것으로 보인다.
제조·유통 업체들은 하반기 성수기에 대비해 상반기 동안 막대한 수량의 메모리 반도체 재고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전자제품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면서 대다수 업체는 추가 구매보다는 재고 소진에 나서고 있다. 7월 하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원인이다.
시진핑 정권이 재정 긴축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중국 내 소비 둔화 우려는 점차 커지고 있다. TV시장이 단적인 예다. 중국 TV 업체들은 통상 하반기 큰 수익을 냈다. 그러나 올해는 이런 패턴이 무너졌다. 중국 TV 제조업체 7~8월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25% 이상 줄었다. TV에는 상당량의 D램과 낸드플래시가 쓰인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팀장은 “D램 산업에서 TV가 차지하는 비중은 7% 수준에 불과하지만 시장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가 1~2%만 움직여도 가격은 10~20%씩 움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체들이 생산 설비 증설에 나선 것도 메모리 가격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D램 부문에 3조5000억원의 설비투자를 단행할 계획이다. 지난해 D램 설비투자 금액 2조5000억원보다 4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3분기를 기점으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정점을 지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투자가 공급량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어서 큰 폭의 가격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