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해킹 사실 숨기기에 급급했던 병원

제보 내용은 놀라웠다. 정보화 시대, 해킹에 예외가 없다고 하지만 병원의 의료정보가 새고 있다는 이야기는 귀를 의심케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었다. 국내 한 보안 회사가 추적한 결과, 신원을 알 수 없는 해커가 국내 다수의 의료정보들을 엿보고 있었다.

[기자수첩]해킹 사실 숨기기에 급급했던 병원

환자의 것으로 보이는 진료기록들이 눈으로 확인됐다. 해당 파일에는 누가, 언제, 어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지 담겨 있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꼼꼼한 확인이 필요했다. 보안 회사의 도움으로 자료를 입수, 해당 병원 측에 건넸다. 해킹이 의심된다며 실제 병원에서 작성한 기록이 맞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그런데 꼬박 하루가 지나고 난 후 한 대학병원에서 돌아온 답은 당황스러웠다. “답변하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무엇이 분명치 않다는 건지 설명 없이 병원 측은 같은 말만 반복했다.

구체적으로 물었다. 기록이 없다는 건지, 아니면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지 설명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시 확인해보겠다”고 전했다. 이름, 생년월일, 진료날짜 등 확인에 필요한 정보는 이미 충분한 상태였다. 그런데 또다시 알아보겠다는 답변은 오히려 의심을 샀다.

정확한 해명이 필요했다. 실랑이 끝에 병원 측이 꺼낸 `진짜` 이유는 이랬다. “사실은 우리 것이 맞습니다. 다만 지금 경위를 확인하고 있는데 (기사에) 언급되면 매우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내부 기록을 확인하고서도 병원의 이미지 손상을 우려해 답을 피한 것이다.

지난 8월 29일 본지 보도 후 반응은 컸다. 구체적인 정보를 궁금해 하는 문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 중에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았다. `왜 우리 병원을 언급했냐`는 식이다. 해킹을 처음 발견한 보안 회사도 이런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일부 병원의 문제 인식에 더 심각성을 느꼈다. 최초의 제보가 없었다면 그들은 병원에서 환자정보가 유출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내 가족의 신체 비밀을 지금도 엿보고 있었을 것이란 얘기다. 끔찍한 일이다.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곱씹어 보길 바란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