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질 줄 알았더니 웬걸, 더 나빠졌어요.”
공공사업 대기업 참여금지 혜택 좀 봤냐는 물음에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그는 작은 SW기업을 경영한다. 설명은 이랬다. 삼성, LG, SK 등 이른바 재벌 계열 정보서비스업체가 프로젝트를 딸 때보다 요즘 수주 금액이 확 떨어졌다. 수주 경쟁이 더 치열해진 탓이다. 수주업체는 준 마진을 벌충하고자 2, 3차 SW 협력사에 갈 대금부터 깎는다. 그가 한숨부터 내쉰 이유를 비로소 이해했다.
중소기업 보호는 오랜 경제정책이다. 특히 지난 정권 동반성장위원회부터 현 정권 경제민주화까지 최근에 더욱 강화됐다. 대기업의 부당한 횡포를 막는 각종 규제를 내놓았다. 의도야 옳다. 무소불위 대기업을 정부 아닌 누가 통제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그 의도와 영 딴판인 결과다. 이런 불일치가 예외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더 큰 문제다.
`하도급거래공정화에관한법률`이 있다. 단가 후려치기 등 중소기업이 당하는 불공정거래 관행을 개선하고자 만든 법이다. 징벌적 제재를 더욱 강화한 개정안이 지난 4월 통과됐다. 경제민주화법 1호다. 결과는 시행도 하기 전에 의도와 달리 간다. 대기업이 규제를 피하고자 아예 중소기업과의 거래를 끊기 시작했다.
의도와 결과가 따로 노는 규제로는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가 으뜸이다. 지난 2011년 11월 발광다이오드(LED)조명이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됐다. 결국 퇴출된 대기업과 중견 기업 자리를 외국 기업이 차지했다. 중소업체는 나아진 게 없다. 일부는 경영난만 심해졌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4일 중견기업 토론회에서 이 제도가 도입 초기와 달리 잘못 적용된다며 동반성장위원회를 대놓고 비판했다. `지난 정권 동반성장정책에 관여한 그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규제 의도와 다른 결과를 인식한 관료가 있는 게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이 정도로 우리 관료사회는 규제 향방 예측에 깜깜이다.
그 원인이 뭘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관료가 시장 메커니즘을 모르는 게 가장 크다. 1년이 길다하고 보직이 바뀌는 관료다. 맡은 업종도 여럿이다. 또 감사에 걸릴까 두려워 기업인과의 접촉도 꺼린다. 이 상황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꿰뚫는 통찰력 깃든 규제를 만든다면 이 게 더 신기한 일이다.
`규제의 역설`이란 경제학 용어가 있다. 좋은 뜻으로 규제를 했건만 엉뚱한 결과를 빚거나 더 상황이 나빠지는 것을 뜻한다. 선진국도 예외는 아니나, 우리나라에 유독 이 역설이 많이 작용한다. 웬만하면 규제로 문제를 풀려는 인식이 팽배한 탓이다. 규제를 곧 힘으로 여기는 관료, 그 힘을 빌려 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익집단이 상통한다. 여기에 정치권까지 끼어든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가 나온다. 새 문제가 불거지면 이를 해결하고자 엉뚱한 새 규제가 튀어나온다. 이러니 `전봇대`와 `손톱 밑 가시`를 없애고 없애도 또다시 생겨난다.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약자를 보호하려면 강자의 횡포를 제어할 장치가 꼭 있어야 한다. 다만, 정밀해야 한다. 또 적거나 짧을수록 좋다. 규제란 게 백신과 같아서 지나치게 많이 쓰면 면역력만 더 떨어뜨린다. 아파서 괴롭다는데 약 처방을 내주지 않는 의사가 처음엔 밉더라도 나중엔 고마운 법이다.
개점휴업이라고 하나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밀린 법안을 처리한다. 법마다 규제가 숨었다. 국회의원들이 이를 잘 찾아내 그 결과까지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돌려야 하건만 아마도 `땡처리`에 급급할 것이다. 오랜 학습효과다. 바쁘신 의원들이 법안 심의 때 시뮬레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규제의 역설`만이라도 떠올렸으면 좋겠다. 이것만 잘해도 행정부 감시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는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