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놓는 전화기 한 대가 집 한 채보다 비쌌던 시절. 지금처럼 누구나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대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기술이 발전하고 가격은 낮아지면서 그 누구도 상상치 못했던 세계를 우리는 살고 있다. 단 10년 전에도 예상 못했다. 핵심은 통찰력이다. 기술의 주제 변화보다 어떻게 기술을 쓰고 사람을 움직이느냐의 변화를 감지해 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벤처신화의 주역이자 보안 1세대인 김홍선 안랩 대표가 20여 년 간 가까이서 본 기술 변화의 모든 통찰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누가 미래를 가질 것인가`는 기술 자체가 아닌 흐름을 짚어 미래를 헤쳐 나갈 돌파구를 찾는 법에 초점을 맞춘다. 영웅담 자서전이나 고리타분한 기술 이야기보다 변화의 단서가 될 만한 생생한 사례들이 꽉 찼다.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를 제대로 해석하는 법`을 알아차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통찰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이행을 겪으며 느낀 기술과 인간, 삶에 대한 조망에서 시작된다. 공중전화, 전화카드로 소통하고 레코드판·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대를 지나며 바뀐 일상에 찾아온 변화는 삶의 모습 자체를 바꿔놓았다. 디지털 기술은 정보를 가진 권력에 힘을 싣고 권위주의 대신 시민이 권력을 장악하는 거대한 축의 이동을 가져왔다.
무엇보다 벤처 기업인들의 열정에 불이 붙었던 시대의 의미와 시사하는 바를 기업가 정신 측면에서 짚는다. 벤처 생태계에 필요한 조건에 대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안랩 창업자인 안철수 의원이 김 대표에게 “IT 인터넷 산업의 초기부터 벤처 열풍으로 뜨거웠던 2000년대 초반을 거쳐 침체기와 제2의 벤처 붐, 지금에 이르는 급속한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지나온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한 표현이 빈말이 아님을 소소한 사례들로 알 수 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설득해 2000년 한국 기업 최초로 손정의 펀드(소프트뱅크코리아)의 투자를 받아낸 김 대표의 도전 정신은 이미 익히 알려졌다.
책은 빠르게 변하는 IT 생태계를 만들고 이끄는 `인재`의 중요성과 역할을 조명하는 데 상당량을 할애한다. 현장을 겪어야 진정한 전문가가 되고 생활 속 경험이 엔지니어의 진짜 자산이라는 김 대표의 충언에는 `겪어본 자`의 진실함이 묻었다. 기술자도 인문학적 고민을 해야 하는 시대에 융합 인재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더했다.
김 대표가 평생을 몸 담아온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개인적 생각이 녹아있다는 점도 후반부를 빛낸다. 젊은 천재가 아닌 평범한 개발자도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한 창의적 엔진이 될 수 있다는 진심어린 마음을 전하고 있다. 인간이 먼저 기계에 다가가는 시대가 아니라 인간에게 먼저 다가서는 기계로 인해 `인간 중심적 사회`가 구현되고 있다는 시각도 긴 여운을 남긴다. `전문가 중의 전문가`가 쓴 책이지만 기술 용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쉽다.
김 대표는 “미래는 먼 곳에서 누군가의 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그 답을 숨겨두고 있다”며 이 책이 현실에서 답을 찾아주는 작은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김홍선 지음. 쌤앤파커스 펴냄. 1만5000원.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