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한국 자동차 산업의 딜레마

[데스크라인]한국 자동차 산업의 딜레마

통상 무슨무슨 산업이라 하면 특정 아이템 뿐 아니라 그 아이템의 전후방 산업 전반을 일컫는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여서 최종 완제품은 기본이고 부품·소재, 제조장비 등 생태계 전반이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세계 5위 자동차 산업국이다. 정확히 표현하면 5위 자동차 완제품(완성차) 생산국이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 정점에 있는 완성차 분야만 돋보일 뿐, 부품·소재·장비 등 전후방 기반 산업은 취약하다. 글로벌 부품업체는 우리 완성차업체의 `갑`으로 표현될 만큼, 완성차 제조 이외의 분야는 해외기업에 의존하는 신세다.

자동차 산업의 정책적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정책 방향을 세계 선두를 향해 뛰는 완성차에 맞출 것인가` `글로벌 5위 생산국이란 강점을 살려 후방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인가` 사실 현대·기아차 의존도가 절대적인 우리 자동차 산업 구조에서는 어느쪽도 정부가 추진력을 갖고 풀어 나가긴 어려운 난제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의 1990년대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선진국을 하나 둘 따라잡던 당시, 정부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반도체 완제품 산업은 승승장구하지만, 핵심 제조장비·부품 등 후방산업은 거의 해외기업에 의존하는 상황. 이 때문에 우리 반도체 장비 부품 시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노다지였다. 특히 기술 장벽이 높은 반도체 전(前)공정 장비는 부르는 게 값이었고, 신기술 개발을 위해 우리 첨단 기술정보를 그들 손바닥위에 바쳐야 했다. 지금의 자동차 산업 딜레마와 흡사하다.

이때 정부와 반도체업계의 선택은 과감한 도전이었다. 소자업체와 장비·부품업체간 공동 개발이 잇따랐고, 정부도 동기부여에 나섰다. 이후 장비 국산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우리 반도체 대기업의 부품 장비 소싱 여건은 호전됐고 부품 장비의 도입가격 인하는 자연스레 따라왔다. 물건을 팔려는 외국계 기업쪽이 `갑` 노릇을 하는 이상한 관계도 정상화돼, 주도권을 국내 반도체 대기업이 쥐는 계기가 됐다. 지금 국산 반도체 장비는 국내 산업생태계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로 전이돼 산업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5위 완성차 생산국임에도 핵심 부품은 해외 글로벌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현재와 같은 상황의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친환경차와 차세대 스마트카로 넘어갈수록 종속 우려는 더 커진다. 부품업체들이 어렵게 개발하더라도 현대기아차가 채택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상황인 만큼, 핵심부품 국산화는 현대기아차의 의지가 절대적이다.

기업은 자신에 땅에 나무를 가꿀 뿐이다. 중장기 로드맵 또한 산업이라는 숲이 아닌 사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데 맞춰져 있다. 숲을 보고 조성하는 것은 정부 역할이자 의무다. 하지만 현 자동차산업구조상 정부 입장도 녹록치 않다. 일례로 자동차 부품 R&D 지원정책을 펴다보면 이를 채택할 현대기아차를 빼고는 진행이 안 된다. 정치권에서는 잘 나가는 대기업에 국민 세금을 쓴다고 질타한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우리 자동차산업 생태계 최정점인 완성차업체 위에 외국계 부품업체가 앉아 있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자동차 강국을 꿈꾸는 지금, 산업 전반을 조망해야 하는 정부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