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다. 국회 기능이 또 고장 났다. 정기국회 개원 전에 결산을 해야 하지만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으로 촉발한 여야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한다. 2011년엔 정기국회 개원이 임박한 8월 31일 결산심사를 마쳤고 지난해에는 9월 3일에야 마무리 지었다. 국회는 지난 11일 예산결산특위 전체회의를 열어 늦게나마 2012년도 결산심사를 진행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12일 예정된 예결특위 결산심사 소위 가동도 중단됐고 부처별 예산결산 심사도 줄줄이 취소됐다. 늘 있어 왔고 예견된 일이다. 이번만은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지만 역시나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당은 감사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만 참여하고 결산심사를 포함한 국회 일정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상 보이콧을 선언함으로써 국회 상임위 활동이 중단됐다. 민생을 외쳐 온 국민의 대표들이 민생을 볼모로 도박을 하는 셈이다. “경제의 피가 말라 수혈이 시급한데 법안 예산 수혈은 내팽개치고 아파 누워있는 경제 환자를 발로 차는 격”이라는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의 비유가 적절하다.
300조원 넘는 국민 세금을 어떻게 썼는지 들여다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낭비요소를 없애고 다음해 예산 심사 때 참고해서 반영할 수 있다. 처리기한을 두 달 훨씬 넘긴 지난해 결산심사는 결국 시한에 쫓겨 졸속 처리될 게 뻔하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이나 기초연금법, 부동산경기활성화법 등 산적한 민생·경제 활성화 법안은 제대로 된 논의도 못했다. 정치적 우선순위에 밀려 안건에서 누락되거나 다른 법안에 뒤섞여 통과한 지도 모르게 통과될 수도 있다.
국회 파행에 따른 낭비도 이만저만 아니다. 관련 부처 공무원은 언제 국회가 열릴지 몰라 대기 중이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스스로 위법을 저지르는 판이니 예측하기도 힘들다. 과천에 있는 부처는 그나마 낫다고 해야 할까.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는 죽을 맛이다. 뿐만 아니다. 산하기관 관계자들도 국회 때문에 좌불안석이다. 국가 고급 인력들이 길거리에 버리는 시간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여야 대치 정국이 장기화하면 내년도 예산안 심사도 법정처리 기한(12월 2일)은 커녕 12월 31일까지 처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나라 살림살이 규모를 결정하는 예산안 심사를 정치적 사안으로 발목 잡는 한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다. 지난 2월 새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내각을 구성하지 못해 정부는 한 달 늑장 출범했다. 역시 여당의 몽니가 발목을 잡았고 나라는 국제적인 망신을 샀다. 여야 정쟁에는 어느 편이든 원인을 제공한 쪽이 있다. 아무리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손님이 오거나 적이 쳐들어오면 멈추는 게 상식이다.
여야도 마찬가지로 경제 현안과 정치는 따로 생각해야 한다. 민생을 살리겠다는 여야가 민생을 볼모로 치킨게임을 하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대치정국이 길어지면 보름동안 `셧다운(정부 업무중단)` 상태에 빠진 미국 연방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도 없다. 예산철마다 이러저러한 명분으로 처리시한까지 물고 늘어지는 게 관행이 돼서는 안 된다. 더 이상 파행은 국민이 받아주지 않는다. 국회도 이제 정치는 정치로, 경제는 경제로 푸는 `쿨`한 모습을 보여줄 때도 됐지 않은가.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