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도체의 모든 길은 3차원(3D) 기술로 통한다.`
종전까지 반도체 시장은 미세공정 기술로 가장 빨리 생산성을 높이는 업체가 선점하는 구도였다. 그러나 지난 2~3년 동안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 발달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기술 진화가 한계에 봉착한 탓이다.
이제 반도체 시장 게임의 룰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전개될 전망이다. 3D 설계·공정 기술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중앙처리장치(CPU) 등 시스템 반도체를 넘어 메모리·센서까지 확장되고 있다. 앞으로는 3D 기술을 선점한 회사가 반도체 시장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두뇌 AP, 3D 반도체 핀펫(FinFET) 기술을 선점하라
20세기 개인용PC 시장이 형성된 이후 인텔은 CPU 시장에서 압도적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었다. 반도체 미세공정 마이크로 시대를 넘어 나노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인텔은 단 한 번도 1등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아키텍처 변경과 미세공정 발전으로 차세대 반도체를 누구보다 빨리 내놓는 인텔을 추격할 회사는 없었다. 오죽하면 경쟁사들이 인텔에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까.
그러나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이 10나노 시대에 접어들면서 삼성전자·TSMC·글로벌파운드리스 등 경쟁사가 인텔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바로 핀펫(FinFET) 기술 덕분이다.
기기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반도체에서는 누설 전류가 발생한다. 문제는 트랜지스터 선폭이 미세해질수록 누설 전류량이 늘어나는 점이다. 반도체 업체들은 하이K 메탈게이트(HKMG) 등 신소재로 20나노대 미세공정까지는 누설 전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그러나 10나노대 미세공정에서 다시 한계에 부닥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안된 기술이 바로 핀펫이다. 핀펫은 3D 입체 구조로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 생산하는 기술을 말한다. 입체 구조로 돌출된 트랜지스터 모양이 상어지느러미(Fin)와 비슷해 핀펫으로 불리게 됐다. 핀펫 기술을 적용하면 종전 2차원 게이트의 절반 수준 전압에서 작동이 가능하고 누설 전류량도 훨씬 줄어든다.
인텔은 지난해 22나노 공정에 이미 핀펫 기술을 적용했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TSMC·글로벌파운드리스 등 주요 업체가 잇따라 핀펫 공정의 반도체 양산에 돌입한다. 14나노 핀펫 공정 성공 여부에 따라 시스템 반도체 업체간 기술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3D 낸드 기술, 날아가는 삼성전자…뛰어가는 SK하이닉스·도시바
낸드 플래시 기술도 3D 전환이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낸드 플래시 1위 업체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메모리 셀을 수직으로 적층한 브이(V) 낸드를 양산해 자사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에 처음 구현했다. V낸드는 종전 낸드 플래시보다 10배 수명이 길고, 읽기·쓰기 속도는 갑절 이상 빠르다. 전력 효율도 40% 이상 높아 꿈의 낸드 기술로 불린다. 내년 초 중국 시안 팹이 본격 가동되면 V낸드 생산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종전에는 미세공정 기술 수준이 낸드 플래시 시장 내 경쟁 우위를 결정지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3D 낸드 공정 기술 완성도에 따라 업체 간 생산 원가와 시장 점유율이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연구개발(R&D)과 자금력을 기반으로 V낸드 공정 완성도를 매우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현재 19나노 공정에서 V낸드로 곧바로 기술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반면에 SK하이닉스와 도시바는 우선 16나노 미세공정으로 넘어간 후 3D 낸드를 양산할 계획이다. 후발 업체들은 내년쯤에나 3D 낸드를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하반기 3D 낸드 샘플 제품을 생산해 고객사에 제공할 계획이다. 도시바도 내년 3D 낸드를 출시한다는 목표다.
◇실리콘관통전극(TSV) 상용화, D램 후공정 기술에 달렸다
D램 역시 미세공정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와 낸드 플래시 전공정에 3D 반도체 기술이 적용된 것과 달리 D램은 후공정(패키징)에 3D 기술이 도입되는 추세다. D램은 한 개의 트랜지스터당 하나의 커패시터가 붙어 전 공정에서 3D 기술을 쓰기 어려운 탓이다.
D램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술은 크게 LPDDR4와 와이드 I/O로 좁혀진다. 현재 스마트폰에는 LPDDR2와 LPDDR3 D램이 쓰인다. 조만간 LPDDR4 D램이 나온다. LPDDR은 세대가 지날수록 작동 주파수를 높여 데이터 전송 속도를 향상시키는 방식으로 진화되고 있다.
와이드 I/O는 입출력 핀 수를 늘려 데이터 전송 속도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와이드 I/O를 구현하려면 반드시 실리콘관통전극(TSV) 기술이 필요하다. TSV는 D램 웨이퍼를 수직으로 쌓은 후 구멍을 뚫고 금속 물질을 채운 후 회로를 연결하는 방식의 기술이다. 현재 TSV 공정은 D램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지만 향후 `AP+D램+낸드 플래시` 통합 패키지 형태로 진화할 전망이다.
V낸드는 원가 경쟁력 확보 기술인 반면에 TSV는 와이드 I/O 등 차세대 기술을 선점하려는 목적이 크다. 와이드 I/O D램과 로직 반도체를 TSV로 적층하면 종전 패키지온패키지(PoP)보다 면적이 35%, 전력 소모량은 50% 줄어든다. 주파수 대역폭은 무려 여덟 배나 증가한다.
와이드 I/O와 TSV의 기술적 성숙도가 낮은 상태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은 오랜 기간 동안 공정 개발에 집중해왔다. 올해 안에 시험 생산한 제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3D 반도체 시장 확대로 준비가 잘된 곳과 그렇지 못한 업체 간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며 “3D 반도체 후방 산업도 양적으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