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22조 제2항에 따르면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 권리는 법률로 보호한다고 규정돼 있다. 발명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특허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현행 특허제도가 발명가를 충분히 보호하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심심찮게 발명가는 자신의 발명을 공개하고 보호 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토로한다. 왜 일까.
발명가가 발명을 하면 특허권이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발명가가 특허를 받으려면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특허권 획득까지 적어도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이후에도 매년 특허 연차료를 납부해야 한다. 이렇게 어렵게 획득한 특허가 걸핏하면 무효가 된다.
무효될 가능성이 있으니 특허권을 침해한 측에서는 자발적으로 특허 침해를 인정하기 보다는 심판이나 소송을 하려고 한다. 침해한 입장에서는 특허 심판이나 소송에서 지면 그때 비로소 특허권자인 발명가에게 손해배상을 하겠다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특허분쟁에서 발명가가 이기려면 특허가 무효가 아니어야 하고 침해자 실시 형태가 특허권 보호 범위에 속해야만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발명가 권리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허 분쟁에서 승소하면 특허권자는 얼마나 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손해를 입증할 수 있다면 손해액을 모두 배상받을 수 있다. 가령 손해를 5억원이라고 증거를 확실하게 댈 수 있다면 특허권자는 5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입증은 어렵고 험난한 길이다. 따라서 항상 손해의 전부를 배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결국 현행 특허제도에서 자발적 특허 라이선스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특허권자는 대개 손해가 되는 게임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특허제도가 발명가에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보게 한다는 인식을 발명가가 가지면 특허제도는 발명가로부터 외면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특허제도에서 발명가는 발명을 공개하고 대가로 독점배타적인 특허권을 획득한다. 그런데 특허출원·심사·등록 과정에서 이미 발명은 공개 되었는데, 발명가 특허권이 무효가 된다면 발명가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본다. 이 경우 사회는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발명가의 발명을 실시할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보면 사회에 이익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의 창조 에너지가 낮아지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특허권에 의해 발명이 충분히 보호되지 않는다면, 발명가는 특허제도를 통해서 발명을 공개하기 보다는 영업비밀에 의한 보호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영업비밀에 의한 보호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밀이 지켜진다면 어느 정도 발명가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발명의 은닉 현상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창조의 역동성은 줄어든다. 사회 발전 측면에서 볼 때 발명의 은닉 현상은 단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으나 좀 더 긴 안목에서 보면 우리 사회 집단지성은 약화되고 창조와 혁신 동력은 약화될 우려가 있다.
특허와 영업비밀 보호 시스템을 발명가가 충분히 보상을 받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창조 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자발적으로 라이선스를 획득하는 것이 침해소송에서 패소한 후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보다 훨씬 이익이 되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착한 행동은 보상을 받고 나쁜 행동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은 그러한 맥락에서 타당하다. 창조의 주체인 발명가, 권리의 주체인 발명가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경란 변리사, 한국라이센싱협회(LES-KOREA) 부회장,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한양대 겸임교수 rana@ezp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