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부산에 있는 한 교회에 법무법인 관계자가 찾아왔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교회가 제작한 예배용 동영상 파일 자막에 컴퓨터 서체(폰트)가 불법으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해당 폰트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 기본 내장된 것이다. 교회 관계자는 “정품으로 구입한 윈도에 설치된 폰트를 다른 응용프로그램에서 활용한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법무법인 관계자는 자막을 제작한 당사자는 처벌받을 수 있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일부 사례지만 사태는 예상 외로 심각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부 법무법인으로부터 경고장을 받거나 합의금 요구를 강요당했다는 글이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대부분 운용체제(OS)나 다른 프로그램에 기본 설치된 폰트를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용했다가 저작권 침해 경고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폰트 사건을 보면 2008년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당시 파일공유 사이트 등에 불법 업로드 하거나 다운로드한 영화를 공유하다 수많은 사람이 고소당하거나 경고장을 받았다.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면서도 저작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초·중·고등학생도 다수 포함됐다. 법무법인은 이들을 범죄자로 몰아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게 두려워 한 학생이 자살하기 전까지 법무법인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저작권은 특허나 디자인 등 산업재산권과 달리 규정이 불명확한 지식재산(IP)권이다. 기준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가해자가 양산되기도 한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영업 활동으로 수익을 늘리려는 일부 법무법인이 저작권에 무지한 일반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돈에 눈이 먼 법무법인들의 행태를 지적했다. 일부 영악한 법무법인이 무고한 국민을 협박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폰트 자살자’가 생겨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의 태도변화와 더불어 국민이 저작권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는 일 역시 시급하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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