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권 남용 여부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애플 간 분쟁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 측 손을 들어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애플과 애플코리아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3세대 이동통신 기술 관련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에 대해 “삼성의 혐의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결정은 지식적재산권 행사가 경쟁법에 위반되는지를 당국이 처음 심사한 것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다. 삼성과 애플은 비슷한 경우로 유럽연합(EU)에서도 소송 중이어서 EU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앞서 애플과 애플코리아는 지난 2012년 4월 공정위에 “삼성이 3세대 이동통신 기술 표준특허 등으로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고 있다”며 삼성전자를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로 신고했다.
애플은 공정위 신고에서 △(삼성이) 특허침해 소송을 부당하게 이용해 (애플과 애플코리아의) 사업 활동 방해 △필수 요소(표준 특허) 접근 거절 △특허 정보 적시 공개 의무 위반 (애플과 애플코리아의) 등 세 가지 불공정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표준특허권자로서 특허 라이선스 협상을 성실히 이행하는 등 특허 침해 소송을 부당히 이용했다고 볼 수 없고 △50개 이상 회사가 3세대 이동통신 기술 표준 특허를 보유하는 등 삼성전자가 가진 표준특허는 필수 요소 접근 거절로 보기 어려우며 △삼성전자의 표준 특허 공개 평균기간은 1년 7개월로 특허정보 공개를 고의로 지연, 적시공개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짓고, 이런 입장을 애플과 애플코리아에 전달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의 판단 근거는 양사가 얼마나 성실하게 협상을 했는지가 핵심이었다. 공정위는 협상 과정을 검토해 삼성전자의 손을 들어줬다. 국내에서는 법원에 이어 공정위까지 삼성전자가 승리하면서 특허소송에서 힘을 얻게 됐다.
삼성전자가 소송을 제기한 표준특허는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원칙에 따라 해당 기업 간 로열티 협상으로 특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랜드란 표준기술로 지정된 특허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차별없이 일정비용을 받고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표준특허는 특정 기술을 구현하거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특허를 뜻한다. 따라서 표준특허권자가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독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해외 경쟁당국이 표준특허를 근거로 한 금지청구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공정위 역시 특허권 남용을 강력하게 견제하겠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럼에도 이번에 표준특허를 기반으로 소송을 제기한 삼성전자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것은 특허 협상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공정위가 지적한 부분은 협상과정에서 양사의 태도다. 공정위는 삼성전자가 애플과 진행한 특허 협상 과정, 제시한 특허료 등이 과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반대로 애플의 특허협상 자세는 불성실했다고 평가했다. 공정위는 △협상 진행 도중 먼저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협상 분위기를 특허분쟁 소송 국면으로 유도 △상황이 애플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면 삼성 특허가치를 종전 인정분보다 저평가하는 실시조건 제안 등이 성실한 협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소송 종결 시까지 삼성전자에게 어떠한 실시료도 지불할 의사가 없다는 점에서 역 특허억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역 특허억류란 라이선스 협상을 하지 않거나 실시료 지급을 지연·회피하는 행위를 뜻한다.
전문가들도 애플이 소송 종결 시까지 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협상의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오세일 인벤투스 대표변리사는 “특허분쟁 발생 전에 라이선스 협상이 원활하게 이뤄졌는지가 관건이었다”면서 “공정위는 삼성은 협상에 제대로 임했고 애플은 협상 테이블에서 불성실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특허권 남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삼성에게 가혹한 것으로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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