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반도체 사업 강화를 공식 선언한 SK하이닉스가 전력반도체에 첫발을 내디딘다. 기존 청주 M8라인을 활용할 수 있는데다 전력반도체가 메모리 설계와 가장 유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외 관련 업체 인수합병(M&A)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개발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보다는 전력관리반도체(PMIC)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SK하이닉스 고위 관계자는“공장(팹) 추가 투자보다는 기존 라인을 활용해 할 수 있는 것부터 제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SK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놓고 주변에서는 SK텔레콤의 통신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모바일AP 사업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SK텔레콤이 엠텍비젼 인수를 추진하면서 AP 개발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탓이다.
하지만 삼성전자·퀄컴·인텔 등 소수 선발업체의 독과점 현상이 심해진 모바일AP 사업에 후발주자로 뛰어들기에는 SK하이닉스의 부담이 컸다. 최근 SK그룹이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개발·제조 출신 인사들을 영입한 것도 SK하이닉스의 PMIC 우선 사업화 전략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SK그룹은 삼성전자 출신 임형규씨를 수펙스추구협의회 ICT기술성장추진 총괄 부회장으로, 삼성전자·코아로직을 거친 서광벽씨를 미래기술전략총괄사장으로 각각 선임하는 등 내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서광벽 사장은 코아로직 재직 시절 휴대폰용 AP 개발을 중단하고 일반 가전용 보급형 AP 등을 개발해 내실을 다진 주역이다.
SK하이닉스는 실리콘마이터스와 함께 M8라인을 활용, 제조 공정을 공동 개발한 경험이 있어 PMIC 설계·제조 노하우도 갖추고 있다. 기존 디스플레이구동칩(DDI), CMOS이미지센서(CIS) 등과 마찬가지로 무리한 투자를 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노후화된 경기도 이천 M10라인 메모리 공정을 신규 팹으로 이전하면서 확보한 300㎜ 웨이퍼 공정을 활용하면 가격 경쟁력도 빠르게 갖출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팔을 걷으면서 관련 팹리스 업체를 대상으로 한 M&A도 예상된다. SK하이닉스가 자체적으로 아날로그 설계 관련 시스템반도체 인력을 보유하지 못한 데다 국내 PMIC 반도체 업계 역시 성장 정체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과 2013년 매출액 1000억원대에서 추가 수익원을 확보하지 못한 실리콘마이터스, 외형 확대에 난항을 겪고 있는 디엠비테크놀로지 등이 유력한 인수 대상으로 손꼽힌다. 아날로그디바이스 출신 등이 모인 무선충전·전력용 반도체 전문 팹리스 맵스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해외 중견·중소업체를 인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략이 주효할지는 미지수다. LS산전이 지난 2009년 인피니언과 합작사 LS파워세미텍을 설립하고 절연게이트양극트랜지스터(IGBT) 전문 업체 트리노테크놀로지를 인수하는 등 전력 반도체 사업에 박차를 가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