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공명 읽기] <10> 태그

아킬레스의 방패.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18권은 영웅 아킬레스가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사용한 방패를 130줄에 걸쳐 묘사하고 있다. 130줄이면 지금 책으로도 몇 페이지에 해당하는 양인데, 방패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도 세밀해서 호메로스가 실제로 존재하는 방패를 직접 보고 묘사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역사적으로 아킬레스의 방패는 ‘일리아드’의 묘사를 토대로 두 차례에 걸쳐 실제로 만들어졌다.

아킬레스의 방패에 대한 ‘일리아드’의 묘사와 재현된 방패
아킬레스의 방패에 대한 ‘일리아드’의 묘사와 재현된 방패

호메로스의 방패 묘사는 에크프라시스(ekphrasis)의 대표 사례로 간주된다. 에크프라시스는 고대 수사학의 한 영역으로, 시각적 예술작품을 언어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회화나 조각 작품의 세세한 부분을 글이나 말로 전해, 이를 읽거나 듣는 사람이 그 작품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에크프라시스는 시각적 표현과 언어적 표현 사이의 전환이다. 에크프라시스와 반대로 문자적 표현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관습도 있었다. 이를 역에크프라시스라 부른다.

에크프라시스와 같은 표현 양식의 전환은 서구만의 관습은 아니었다. 중국 송나라에서는 왕실의 화가를 선발할 때 특정 장면을 묘사한 글을 주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내도록 했다. 2008년 방영된 ‘바람의 화원’이라는 TV드라마에서 어진(왕의 초상화)을 그릴 화가를 선발하기 위해 주인공인 신윤복과 김홍도에게 채제공이라는 것을 감춘 채 그를 묘사한 글을 주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내도록 했다.

옛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인상착의를 묘사한 그림을 용모파기(容貌〃記), 줄여서 ‘용파’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몽타주다. 여기서 ‘파’는 흉터를 의미하는데, 이 글자를 내세운 이유는 얼굴에 흉터가 있을 때 이것이 가장 뚜렷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용파는 범인을 본 목격자의 진술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역에크프라시스에 해당한다.

사실 언어라는 표현 양식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욕망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정적인 예술작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영화나 비디오와 같은 움직이는 그림, 나가서는 음악과 같은 사운드, 심지어는 데이터나 컴퓨터 실행파일 등도 언어적 표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태그는 인터넷이나 전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할 문서, 책, 이미지, 사운드, 숫자 데이터, 소프트웨어, 장소 등 멀티미디어 자료에 부여되는 일종의 메타데이터다. 우리는 이런 태그 덕분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검색해 낼 수 있다. 한 자료에 태그는 하나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적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 개에 달할 수도 있다. 태그가 많아질수록 그 정보에 대한 묘사는 정밀해지는 셈이다. 이 같은 대상에 대한 정밀한 서술은 호메로스가 아킬레스의 방패를 묘사한 세세함에 비견될 수 있다. 태그는 멀티미디어 정보를 문자라는 언어적 표현 양식을 활용해 규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에크프라시스다.

그러나 태그라는 에크프라시스와 수사학의 에크프라시스는 언어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차이점도 있다. 시각적 대상만을 언어적으로 기술하는 전통적 에크프라리스와 달리 태그를 통한 디지털 에크프라시스는 멀티미디어를 대상으로 한다. 예술적, 수사적 목적의 전통적 에크프라시스와 달리 디지털 에크프라시스는 자료 저장과 검색이라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전통적 에크프라시스가 문학적, 예술적 언어를 사용한다면 디지털 에크프라시스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언어적으로 대상을 규정하고자 하는 욕망을 매개로 전통적 에크프라시스와 디지털 에크프라시스는 공명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