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장 중인 스마트폰 게임 시장에서 ‘갑의 횡포’가 판을 친다. 대형 배급사가 중소 개발사와 맺은 계약을 취소한 뒤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했다. ‘을’의 위치인 중소 개발사는 비용 부담에 허리가 휘면서도 향후 관계를 이유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넥슨, CJ E&M 넷마블, 게임빌, 컴투스, 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 NHN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게임 배급사가 지난해 계약한 모바일게임과 온라인게임을 올 초부터 잇달아 취소하고 있다.
대형 게임 업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모바일 롤플레잉게임(RPG) 장르가 뜰 것으로 예측하면서 중소 게임 개발사와 앞다퉈 계약을 했다. 하지만 시장이 빠르게 변하자 ‘다작’보다 ‘선택과 집중’으로 전략을 바꾸고 개발사에 줄줄이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스마트폰 게임뿐 아니라 PC 온라인게임도 시장 상황 변화와 내부 사정 등을 이유로 해약이 잇따랐다.
한 중소 개발사는 지난해 초 계약을 하고 2분기 말 출시하기로 했으나 게임을 완성한 뒤에도 수개월 동안 출시를 기다리다 올해 초에야 최종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 비슷한 시기에 계약한 다른 개발사도 개발 완료 후 6개월 이상 출시를 기다리다 같은 처지에 처했다. 계약 해지 도미노는 대형 게임사의 지나친 모바일게임 확보 경쟁 탓이다. 게임 확보 경쟁을 벌이다가 시장 흐름이 바뀌자 사업 전략을 변경하면서 우후죽순 계약 취소를 통보한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계약금이다. 독점 출시 권한을 갖기 위해 배급사는 1억원 안팎의 비용을 개발사에 계약금으로 지급한다. 중소 개발사 특성상 계약금은 전액 개발비로 쓴다. 배급사가 먼저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 개발사는 계약금을 반환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급사가 출시 일정 지연이나 시장 변화를 빌미로 계약금 반환을 요구한다. 계약서가 애매한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출시 일정은 양사 합의로 정한다’든지 ‘테스트 기준은 차후 결정한다’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문구가 대표적이다. 합의나 차후 결정에서 주도권은 갑의 위치인 대형 게임사에 있다. 따라서 중소 개발사는 계약금 반환 요구가 부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개발사가 당장 지불 능력이 없을 때 대형 게임사는 해당 게임이 다른 경로로 출시되면 일정 수익을 나누도록 하는 방책까지 악용한다.
한 개발사 대표는 “1년 전만 해도 초기 개발 상황도 보지 않고 계약할 정도로 좋은 작품을 놓치지 않으려는 대형 게임사 경쟁이 치열했다”며 “결국 대기업이 시장을 잘못 예측한 기회비용을 중소 개발사들이 부담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개발사 대표는 “출시를 차일피일 미루다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배급사가 많고 이 때문에 피해를 본 사례는 한 개발사에 여러 건일 정도로 수없이 많다”며 “해외 배급사는 계약 잔금을 모두 치르고 해지하기도 하는데 국내 배급사는 당연한 것처럼 계약금 반환을 요구해 의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한 대형 게임사 측은 “일반적으로 내부 품질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때에 계약금 반환을 요구하지만 어느 한쪽에 100% 귀책사유를 묻기 힘들다”며 “계약금 반환을 요구해도 실제로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해명했다.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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