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대통령과 드레스덴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5년 2월 13일 밤 10시. 독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서 깊은 도시 중 하나인 드레스덴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드레스덴 시민은 동쪽 하늘에서 폭격기 무리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분후 800여대에 달하는 영국과 미국 폭격기가 폭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연합군은 15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소이탄 65만개와 3900개 고폭탄을 투하, 도심 39㎢를 초토화시켰다. 7만8000채 집이 완전 파괴됐으며 2만7700채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다. 인명피해도 심각했다. 폭격 직후 독일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인명피해는 소각된 6865명을 포함, 전체 사망자 수가 약 2만5000명이었다. 당시 생존자는 폭격으로 인한 고열 때문에 발생한 불기둥이 블랙홀처럼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빨아들였다고 증언했다.

전쟁이 끝나고도 시체는 계속 나왔다. 1966년 재건 공사 도중 한꺼번에 1858구가 나왔으며1989년에도 빌딩 기초 공사 도중에 폭격으로 희생된 시체를 발견했다. 이렇게 뒤늦게 발견한 시체가 약 1만구로 총 희생자 수는 3만5000명 정도지만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드레스덴은 슬라브어로 ‘숲속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게르만의 식민에 의해 1200년 이전에 성(城)이 구축되고, 1206년에 도시가 됐다. 18세기에 이르러 각종 문화시설을 정비해 독일의 유서 깊은 도시가 됐다. 그러나 7년전쟁 때 프로이센군 포격을 받아 도시는 파괴됐다. 또 나폴레옹 전쟁 때에도 나폴레옹이 도시를 작전기지로 삼고 열국군(列國軍)과 싸웠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부흥해 19세기에는 독일의 교통·공업 중심지의 하나로 성장했다. 2차 세계대전 후 폐허의 역사를 딛고 일어난 드레스덴은 현재 유럽 내 대표적인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꼽힌다. 3만5000여명이 재학하는 독일 최대 기술대학인 드레스덴 공대를 비롯해 10개 대학, 3개 막스프랑크 연구소, 10개 프라운호퍼 연구소, 5개 라이프니츠 연구소 등 세계적 연구기관이 있다.

또 지멘스, 폴크스바겐 등 기업과 AMD, 인피니온 등 반도체와 정보기술(IT) 분야 기업이 생산시설을 지으면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부상했다. 현재 시의 연구인력은 1만5000명이 넘고 고급인력 노동자의 비율은 20%에 이를 정도다.

드레스덴시는 독일에서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로도 알려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89년 12월 19일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가 ‘목표는 독일 통일’이라고 선포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해 200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10주년 공식 기념행사가 드레스덴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처럼 아픔과 혁신이 존재하는 도시를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저녁 방문했다. 드레스덴은 과거 동독지역이다. 한국 대통령이 동독지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28일 드레스덴 공대에서 연설하고 이른바 ‘드레스덴 통일 독트린’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박근혜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창조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드레스덴은 통독 후 독일을 넘어 유럽의 대표적 과학비즈니스 도시로 탈바꿈했다. 동독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통일 후 독일의 실리콘밸리로 거듭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드레스덴 방문이 남북한 경제협력 실타래를 풀고 창조경제가 추진력을 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