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규제 혁파는 국회의 몫이다

규제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마침 국회도 열려 있다. 그러나 국회는 기업들의 규제야 풀리든 말든, 온 촉수를 6·4 지방선거에 갖다대고 있다. 정부가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며 규제혁파를 위해 안달복달하는 것은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일로 던져버렸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는 규제와 너무나 깊숙이 연결돼 있다. 아니 규제가 생산되고, 확대되는 ‘본산’이 다름 아닌 국회다. 이중삼중 철조망 같이 기업 활동을 옭아매는 규제가 거의 매일 만들어지고, 영향평가나 제대로 감수조차 받지 않고 하룻밤에 110개가 넘는 법을 통과시키는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뭘 해보라’는 법은 없기 때문에 법은 존재 자체로 규제 성격을 띤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규제공화국이면서 ‘입법 천국’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 의원입법안은 모두 1만2220건 발의됐다. 같은 기간 정부입법안 1693건의 7.2배나 된다. 문민정부 말과 국민의 정부가 겹친 15대 국회(1996~2000년)의 1144건에서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정부입법이 807건에서 배가량 늘어난 것에 비하면 가히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정부입법도 속성은 매한가지 규제이지만, 한 가지 더 이면에 감춰진 숫자를 들춰봐야 의원입법의 해악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전경련이 지난 2011년 조사한 것에 따르면 지난 2008년 5월 30일부터 2011년 6월 30일까지 18대 국회 때 의원발의안 중 규제 신설·강화 법안은 전체 17.8%로 정부발의안의 규제 신설·강화 비중 9.4%보다 배 가까이 높았다. 역으로 규제 완화·폐지 내용을 담은 의원입법안 비율은 10.4%로 정부안 14.4%보다 훨씬 낮았다.

결국 일반 국민이나 기업들은 정부가 온갖 규제를 만들고 밀어붙인다고 생각하지만 국회가 더 규제 생산에 적극적이고, 푸는 데는 인색하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법이 발의된 후 실제 법으로 가결되는 비중도 우리나라는 너무 높다. 입법이 국회의원의 ‘업적’으로 매겨지니 남발하고 본다. 18대 국회 때 발의된 의원입법안 1만2220건 중 1663건이 가결돼 가결률이 13.6%나 됐다. 우리나라 18대와 4년이 겹치는 프랑스 국회(2007~2012년)에 6070건이 제출돼 단 90건(가결률 1.5%)만 통과된 것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높다. 비슷한 시기 일본 의회(2009~2012년)의 가결률은 36.4%로 우리 보다 훨씬 높지만, 전체 발의법안 수가 253건으로 우리의 50분의 1 수준인 것을 보면 우리 국회가 비정상적인 것은 분명해진다.

대통령이 지칭한 대로 ‘암덩어리’ 규제를 도려내는 일이 국민에게 약속됐지만 국회 관심은 6·4지방선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당권 교체에 쏠려 있다. 기업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규제법을 수도 없이 만들어 놓고는 딴청이다. 그러면서 표와 지지를 구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푸드트럭이니, 공인인증서 같은 전시성 혁파는 재빠르게 이뤄졌어도, 진정 기업 활동에 돌파구가 될 규제 대부분은 법을 고쳐야 하는 것들이다. 국회가 ‘규제권’을 직접 행사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구조다.

활력을 잃는 정부 행보의 대부분 걸림돌이 국회에서 나온다. 대통령중심제 권력이 의회 권력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국회를 바꿔야 기업과 산업이 뛸 수 있고, 국민 생활도 나아진다.

다음 선거까지 기업과 국민들이 지켜볼 것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