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서사학의 관점에서 내러티브의 범매체적 성격을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해명하는 시도다. 내러티브를 지원하는 물질적 지원체계인 매체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스토리텔링이 실현되는 다양한 양상을 분석한다.
더욱이 문자 텍스트의 대표적 장르인 문학의 서사성이 도전받고 있는 시점에서 스토리텔링의 화자와 청중 사이에 이루어지는 구술언어의 역동성과 제스처의 서사적 특성들을 분석한다거나 대중매체의 총아인 영화와 텔레비전, 그리고 컴퓨터게임과 가상환경을 기반으로 쌍방향적 서사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서사이론의 최근 흐름과 연구 경향도 시사해준다. 이러한 연구는 결국 오늘날 급변하는 다매체 환경에 처한 독자들에게 내러티브를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하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매체와 스토리텔링의 관계에 집중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작동과 아울러 개별 매체의 특징과 한계를 다시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한다. 이 책의 또 다른 의의는 주로 문학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스토리텔링을 비언어적 내러티브 연구, 즉 대화와 영화, 디지털 등으로 확장한 것이다. 매체에 의해 제한받는 동시에 매체를 뛰어넘는 스토리텔링 연구를 지향하는 이 책은 향후 스토리텔링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누군가가 다른 누구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고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 즉 내러티브는 전달 매체에 따라 어떠한 양상으로 그 특성을 드러내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우리는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서사성이 위기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매체의 진보와 소통 가능성의 확대로 인하여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구현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그럼에도 스토리텔링에 대한 진지한 이론적 관심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서사이론이 다루는 매체와 스토리텔링의 관계를 좀 더 시간을 갖고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글들의 독창적이면서도 면밀한 관점은 독자들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내러티브의 본질에 대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매체를 통한 새로운 내러티브의 가능성에 대하여 꼼꼼히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모바일 화면이 모든 소통의 가장 진화한 양식인 듯 쫓아가기만 바쁜 시대에, 이 책은 스토리텔링과 매체의 결합이 진화해온 맥락을 이해하고 그것이 던져주는 연구 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문화연구자나 매체연구자, 문학비평가와 영화연구자들 그리고 각 분야에서 스토리텔링을 기획하는 이들과 관련 분야의 대학생들에게 참고 자료로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엮은이 마리-로어 라이언은 서론을 통해 내러티브를 ‘해석자의 인지적 구성물 또는 정신적 이미지’로서 정의하며 이러한 견해를 토대로 내러티브의 기본 속성을 제시한다. 화자와 청자의 이야기 시공간을 전제로 한 대면 서술을 다룬 1부에서, 데이비드 허먼은 서사물과 매체의 관계에 대한 상반된 논점들을 정리하고, 구두 스토리텔링의 서사구조를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서사구조와 비교해가면서 분석한다.
또 제스처 시학의 이론가인 저스틴 카셀과 데이비드 맥닐의 글은 만화나 영화의 스토리를 전달하는 화자의 제스처가 내러티브 층위에 따라 어떠한 서사적 기능을 수행하는지 자세하게 분석하여, 언어 기호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내러티브의 숨은 구조들을 밝히고 있다.
마리-로어 라이언 엮음. 조애리 등 옮김. 한울 아카데미 펴냄. 4만2000원.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