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단말기 시범사업’이 정부의 졸속 추진에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대형가맹점 약 3만 곳을 대상으로 IC단말기 시범사업 준비에 들어갔다. 판매시점관리(POS)시스템 고객정보 유출로 인한 관리 책임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당초 하반기로 예정돼 있던 시범사업을 7월로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시범사업은 해킹 등을 통한 개인정보 유출 위험성이 높은 POS시스템을 IC단말기로 교체하고 기존 설치된 겸용단말기는 마그네틱(MS)카드 결제시 “IC로 결제해 주십시오”라는 안내 문구를 통해 ‘IC 우선 결제’를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다.
문제는 정부가 시범사업 일정을 앞당기면서 기존에 IC단말기 인프라를 갖춘 가맹점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에서 발생했다. IC단말기 인프라를 확산시키는 것이 시범사업의 목적인데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다는 지적이다.
IC전환 태스크포스(TF)팀 관계자는 “인프라 미비 등으로 7월에 시범사업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실무진 입장을 전달했지만, 금융당국은 윗선에서 무조건 7월에 해야 한다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범사업 대상 가맹점으로는 지난해 IC단말기를 도입한 현대백화점과 롯데마트, 신라면세점 등이 거론되고 있다. 대형가맹점을 시범사업에 끌어들이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 등 유관기관과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시범사업에 참여할 가맹점이 부족하자 금융당국은 카드사에 대형가맹점 5곳을 의무적으로 섭외하라는 지시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들 대형가맹점은 카드사의 압력에 IC단말기 인프라를 앞당겨 갖춰야한다는 의미다.
더 큰 문제는 POS 보안표준도 확정되지 않은 점이다. 결국 IC결제가 보안성이 높은지 판단할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얘기다.
밴(VAN)업계도 정부 시범사업에 발맞춰 오는 9월부터 IC단말기 교체작업에 본격 뛰어들 예정이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여론에 밀려 부랴부랴 시범사업을 추진하다보니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IC전환을 위해 조속히 움직여야하는 것은 맞지만 준비과정 없이 시범사업을 벌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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