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자사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의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지난 2007년 첫 사망자 발생 이후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이 유감 표명을 넘어 공식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승계 작업과 맞물려 불안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됐다.
권 부회장은 14일 오전 서초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 마음 아프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근무하다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직원과 유가족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기자회견은 지난달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피해자 가족, 반올림(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이 삼성전자에 제안한 내용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심 의원 등은 삼성전자에 △공식 사과 △제3의 중재기구 구성 및 합당한 보상 △제3의 기관을 통한 반도체 사업장 종합진단 실시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시행의 세 가지를 제안했다.
삼성전자는 이후 심 의원과 반올림이 중재기구 구성에 이견을 보였다는 이유로 답변을 미루는 듯했으나 이날 전격적으로 사과하고, 심 의원 측 요구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합당한 보상과 함께 중재기구 구성,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 후속 조치를 이어가기로 했다. 심 의원실은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사태 발생 이후 7년여 만에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이 ‘공식 사과’로 방침을 선회하자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악화와 삼성SDS 상장 등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 가속화 일환 작업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승계 과정에서 자칫 터져나올 수 있는 악재 요인을 사전에 제거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려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는 백혈병 발병과 반도체 사업장의 인과관계까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이인용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인과관계를 인정하는지의 질문에는 “그것은 아니다. 그 부분 이야기는 지금 하는 게 옳지 않다”고 답했다. 권 부회장 발표문에서도 ‘피해자’라는 단어는 쓰이지 않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
2005년 6월삼성전자 기흥 반도체 공장 여성노동자 황유미씨, 급성 백혈병 진단
2007년 3월황씨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
〃 11월`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반올림)‘ 발족
2010년 1월황씨 유족 등 백혈병 피해자 5명, 서울행정법원 소송 제기
〃 7월삼성전자, 미국 인바이론에 반도체 근무환경 재조사 의뢰
2011년 6월백혈병 행정소송 1심 선고. 황씨 등 2명 산업재해 인정 판결
〃 7월인바이론, 반도체-백혈병 무관 결론
〃 9월삼성전자, 피해자측에 법적 조정 제안
〃 12월삼성전자-반올림, 본 협상 개시
2014년 2월황씨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및 사회적 논란 확대
〃 4월심상정 의원과 피해자 가족 및 반올림, 삼성전자에 공식 사과와 합당한 보상 등 요구
〃 5월삼성전자, 공식 사과와 합당한 보상 요구 수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