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에 세계 최고층 3차원(D) 적층 기술을 도입키로 하고 최근 또 다시 정부 신고 절차를 마무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특히 삼성그룹 경영 승계가 빨라지는 분위기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시안 프로젝트의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경영 능력’을 가늠할 첫 시험대로 평가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공격적인 행보 속에 최첨단 반도체 기술이 연이어 중국으로 나가면서 자칫 우리 산업을 위협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18일 삼성전자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9일 준공식을 가진 시안 반도체 팹(FAB)의 3D 공정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하고 지난 3월 정부에 기술 수출 신고 절차를 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가뜩이나 기술 유출 우려가 끊이지 않는 시안 공장을 채 준공하기도 전에 이미 차기 공정 도입 준비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신고한 기술은 지난해 8월 세계 처음 양산에 성공한 적층형 구조 낸드 플래시 메모리 ‘브이(V)낸드’의 차기 버전이다. V낸드는 원통형 CTF(Charge Trap Flash) 셀을 수직으로 쌓아 미세 공정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이다. 현재 세계 반도체 기업 중 삼성전자만 유일하게 양산 단계에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경기도 화성사업장에서 V낸드 양산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시안 팹을 V낸드 주력 생산기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미 시안 팹에는 24층 구조 V낸드 양산 라인이 구축됐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안 생산라인을 24층에서 32층 이상의 V낸드 양산이 가능하도록 전환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아직 구체적인 투자 일정과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후속 작업이 연내에 진행될 것으로 관측됐다.
삼성전자가 V낸드 구조를 24층에서 32층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은 시장성을 확보하고 후발 주자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현 24층 V낸드는 기존 19나노 낸드 플래시와 비트(bit)당 생산 가격이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됐다. 경쟁사들은 삼성 V낸드에 대비해 미세공정을 19나노에서 16나노로 전환 중이다. 삼성전자가 24층 V낸드에 머물고, 경쟁사들이 16나노 미세공정에 성공하면 역전당할 수 있다. 반대로 32층 V낸드를 양산하면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32층 V낸드는 구조적으로 10나노대 중반에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그동안 끊임없이 자질론에 휩싸여 온 이 부회장에게는 성과를 검증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 부회장은 오래전부터 시안 프로젝트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실패하면 반도체 산업 특성상 삼성전자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 산업 전체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됐다. 2년 전 수출 신고를 마친 미세공정 기술에 이어 첨단 3D 공정도 연이어 중국으로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투자가 중국에서 먼저 이뤄지는 ‘역전 현상’이 빚어질 공산도 커졌다.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최초 시안 프로젝트 추진 당시 국내와는 기술 시차를 두겠다고 정부에 약속했지만 사실상 무의미해졌다”고 비판했다. 중국이라는 거센 추격자의 안방에 첨단 기술을 적용하면 우리나라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는 반도체 산업에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걱정인 셈이다.
기획취재팀기자 jeb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