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SW 개발자와 새벽 인력 시장

[기자수첩]SW 개발자와 새벽 인력 시장

여름이 다가오면서 해가 일찍 뜬다. 그러나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 네다섯 시부터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승합차 몇 대가 다가왔다. 보조석에 있던 작업반장은 “아파트 시공 세 명!”이라고 외치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승합차에 올라탔다. 차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다음 차를 기다렸다. 새벽 인력 시장의 흔한 풍경이다.

새벽 인력 시장 구조를 쏙 빼닮은 곳이 바로 SW 인력 시장이다. ‘발주자-일반건설업체-전문건설업체-건설기능인력’ 형태의 건설 산업처럼 SW도 ‘발주자-1차협력사-2차협력사-SW 개발인력직 소개소(보도방)-개발자’ 등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갑’ ‘을’이 아닌 ‘정’쯤의 관계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에 개발자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계약 관계에서도 저만치 아래 있는 SW 개발자가 발주자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통계 비주얼라이제이션을 위한 R프로그래밍’ 프로젝트 개발자를 모집하는 과정이 단적인 예다.

3개월 계약직으로 모집해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일하는 조건으로 일당이 4만2000원이다. 업체마다 다르지만 새벽 인력 시장 인건비가 일당 7만~8만원 수준인 것에 비해 절반에 못 미친다. 시급은 7000원으로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SW 개발이라는 전문성이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는 실력으로 취급받은 사례다.

개발자 처우 인식은 비단 한국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직까지 많은 ‘갑’들의 잘못된 눈높이에 힘들어하는 개발자가 많다. 그들만의 일일까. 납품일정을 맞추기 위해 주말에 불려나와 일하는 개발자, 머슴처럼 일만 하는 개발자, 자기 자식에게는 절대 개발자의 길을 걷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개발자들이 산업 생태계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한목소리로 SW 산업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사람이 제대로 일하고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JAVA 세 명!” “C++ 두 명!” 외치는 소리에 개발자들이 승합차에 올라타는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