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베팅으로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손에 넣은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5위 완성차 메이커라는 위상에 걸맞은 그룹 컨트롤타워와 국내 자동차 산업을 대표할 랜드마크를 건설할 ‘기회의 땅’을 얻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수가 완성차는 물론 부품과 철강 등 소재 계열사를 망라한 그룹 전반의 제2 도약을 위한 최고경영층의 구상과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정몽구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일부에서는 당초 감정가의 세 배가 넘는 거액의 입찰 가격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글로벌 5위 업체 위상에 부합하는 브랜드 가치 상승과 그룹 운용의 효율성을 감안하면 향후 부가가치가 더 크다는 시각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입찰에 주력 계열사인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앞으로 10조5500억원의 부지 매입 금액과 건설 비용도 동등한 비율로 나눠 내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30개에 달하는 그룹 계열사의 지리적인 통합 및 브랜드 가치 상승 효과가 부지 입찰 가격에 반영됐으며, 미래 가치를 감안할 경우 무리한 투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특히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룹 차원의 일사불란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이 시급하다는 점에서 과감한 투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00년 연간 253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해 세계 자동차 업계 10위권에 처음 진입했다. 이후 지속적인 품질 개선과 새로운 마케팅 도입 등 경쟁력 향상을 통해 지난해 세계 시장에서 756만대의 판매고를 올리며 글로벌 ‘빅5’ 위상을 확고히 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 생산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영도 가속화됐다. 이에 따라 전 세계 9개국에서 31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생산, 연구개발(R&D), 디자인은 물론 수직계열화된 자동차 전문 그룹으로서 계열사까지 통합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가 절실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그룹 5개 계열사의 5000여명 안팎이 근무하는 서울 양재동 사옥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이르렀다. 실제 서울시에 소재한 현대차그룹 계열사는 30개사로, 소속 임직원은 1만8000명에 달한다.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의 본사가 외부 빌딩을 임차해 입주해 있고, 현대·기아차와 현대제철 국내영업본부가 본사와 떨어져 업무 효율성도 떨어졌다.
이런 비효율을 해소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서울 성수동 뚝섬에 랜드마크 빌딩을 건립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도심과 부심에만 초고층 빌딩을 허용하는 서울시 방침으로 인해 이 같은 계획이 무산되면서, 서울의 마지막 남은 대규모 부지인 삼성동 한전 부지 인수에 공을 들여왔다.
현대차그룹은 자동차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개인의 삶과 소통하는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고, 브랜드 이미지가 미래 자동차 시장 성패를 가름할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를 브랜드 제고의 거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미 폴크스바겐, BMW, 메르세데스-벤츠, GM, 도요타 등의 경쟁 업체들이 본사와 인근 공간을 활용해 출고센터, 박물관, 전시장, 체험관 등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고 있어 현대·기아차도 이와 유사한 랜드마크 건설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한전 부지 인수는 단순한 중단기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경영 차원에서 30여개 계열사가 입주해 영구적으로 사용할 통합 사옥 건립이 주된 목적”이라며 “100년 앞을 내다 본 글로벌 컨트롤타워로 현대차그룹 미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부지 매입 가격과 향후 개발비까지 합하면 총 20조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효율적인 재원 마련 및 리스크 관리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특히 경쟁 업체에 비해 적은 수준인 연구개발 투자를 위축시키지 않고, 기술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병행하는 것도 과제라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한전 부지 인수에 10조원이 넘는 입찰 가격을 써 낸 것은 부지 인수와 건설 이후의 부가가치를 그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입찰에 참여한 계열사들의 현금 보유가 30조원이 넘어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연구개발 투자 등 중장기적인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다”고 밝혔다.
양종석기자 jsy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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