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이 전력반도체 기술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스마트 기기뿐 아니라 사물통신(IoT)·전기차 등 차세대 성장동력을 선점하는 데도 전력반도체 기술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반도체가 D램·낸드 플래시·CMOS이미지센서(CIS)에 이어 우리나라 대표 반도체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등 자체 칩 개발에서 파운드리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지만, 전력반도체 연구개발(R&D) 부문은 꾸준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모바일·디스플레이용 전력반도체뿐 아니라 전기차·신재생 에너지용 소자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자체 통신칩 ‘엑시노스 모뎀303’에 전력관리솔루션인 ‘엔벨롭트래킹(envelop tracking)’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전력을 주파수와 전력 요구 수준에 따라 실시간으로 나눠 베이스밴드와 전력관리반도체(PMIC), 무선전력증폭기(PA) 등과 연동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LG도 전력반도체 기술 확보에 적극적이다.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은 올 초 일본 반도체 업체를 직접 방문해 기술 자문을 받기도 했다. LG그룹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꼽은 전기차 사업을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전력반도체 기술이 전기차 에너지 소모량뿐 아니라 품질에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팹리스 업체 실리콘웍스를 자회사로 편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SK하이닉스도 메모리 중심에서 벗어나 종합반도체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전력반도체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 전력반도체 팹리스 업체 실리콘마이터스와 M8라인을 활용, 제조 공정을 공동 개발한 경험도 있다. 사실상 전력반도체 설계·제조 노하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전력반도체 기술을 보유한 팹리스 업체를 대상으로 인수합병(M&A)도 추진 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공정 기술력이라면 CIS처럼 전력반도체 사업에서도 큰 투자 없이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M10 라인 중 300㎜ 웨이퍼용 일부 설비를 활용한다면 가격 경쟁력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이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나름 성과를 내고 있지만, 시장에 안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전력반도체 기술력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 대비 50~70% 수준에 불과하고, 시장 진입장벽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로 무장한 인피니언·맥심·르네사스 등 글로벌 업체들은 이미 모바일 시장을 넘어 전기차·산전 등 고부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증권가 한 애널리스트는 “전력반도체가 손상되면 전기 공급이 끊겨 기기가 작동하지 않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수요 기업들이 쉽게 거래처를 쉽게 바꾸지 않는다”며 “설계·공정·패키지·모듈 프로세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