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이별의 날이었다. 2008년 1월 16일 오후 5시.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는 ‘2008년 정보통신인 신년인사회’가 열렸다. 행사 직전 정통부 폐지안을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현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이 발표했다. 권력 무상(無常), 조직 무상이었다.
유영환 정통부 장관(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의 표정은 침통했다.
“십이간지 순서를 정할 때 원래 소가 1등이었지만 소뿔에 매달려왔던 쥐가 1등을 했습니다. 새 정부의 조직개편을 보면서 우리가 소처럼 우직해서만은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정통부가 그동안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결국 정통부 해체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자 십이간지 설화를 들어 인수위를 비판한 것이다.
유 장관은 “(정통부) 해체를 발표하는 날 이 자리에 서 있으니 착잡하고 송구스럽다”며 “IT는 다른 산업과 달리 동반성장을 해나가는 산업인데, 산업 간 연결고리가 끊어져 성장동력을 잃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출범의 산파역을 담당했던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인수위 외과의사들이 정통부를 세 가닥으로 수술해 버렸고 대부분의 정보통신인은 이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인수위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행사에는 전·현직 장차관, ICT 최고경영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ICT 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정통부 폐지를 막을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회 입법처리 과정에서 정통부를 살리는 안이고 다른 하나는 인수위가 수정안을 내는 안이었다.
특히 윤동윤 장관을 비롯한 신윤식(현 정보환경연구원 회장), 이계철(방송통신위원장 역임), 박성득(한국해킹보안협회장) 등 전직 차관들이 국회와 인수위 등을 뛰어다니며 정통부 살리기에 앞장섰다. 정통부 폐지를 반대하는 탄원서도 제출했다.
윤동윤 전 장관의 증언.
“당시 국회와 인수위에 정통부 폐지는 절대 안 된다는 탄원서를 전달했습니다. 국회에서 유인태 행정자치위원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과 김효석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등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정통부 해체에 반대했습니다. 인수위에서 이경숙 위원장은 못 만나고 김형오 부위원장(국회의장 역임, 현 부산대 석좌교수)을 만났습니다. 일행과 함께 만난 뒤 나와 둘이 면담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자기 소관이 아니어서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원론적인 말만 했습니다.”
탄원서는 석호익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현 통일IT포럼 회장)이 작성했다. 석 원장은 노준형(현 김앤장 고문), 유영환 전 장관과 행정고시 21회 동기였다. 그는 당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대선에서 정부조직개편론이 거론될 것에 대비해 정보통신 미래상과 ICT를 통한 성장과 고용, 정보통신 융합 방안이 담긴 정보통신 발전 비전 수립을 노준형 장관에게 제안했다.
석 전 원장의 회고.
“노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하겠다고 하니까 혼자 장관실에서 하라고 하더군요. 저를 배려해서죠. 그 자리에서 ‘대선 준비를 해야 한다. 연구원에 30억원을 지원해 주면 비전을 만들어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노 장관이 ‘선배님이 필요한 대로 지원하겠다’고 해 당시 유영환 차관과 해당 실·국장 등에 장관 지시사항을 전달했습니다.”
석 원장은 연구원 조직을 개편해 매주 회의를 주재하며 이 업무를 챙겼다. 하지만 중간에 이 일이 중단되고 말았다.
석 원장의 말.
“이한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현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요청으로 만났더니 ‘한나라당 정보통신 공약을 만들어달라’고 해요. 그래서 ‘국책연구원장이 야당 정책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그 대신 공식 발표자료는 줄 수 있다’며 자료를 준 적이 있습니다. 최경환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경제부총리)도 ICT 전문가 두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했습니다. 비전을 만들어 대선주자들에게 제시했더라면 정통부 폐지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일했던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KISDI 원장 역임)의 증언.
“당시 인수위가 정부조직개편 모델로 참고한 것은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 정부였습니다. 일본은 1부 20성·청을 1부 12성·청으로 과감히 줄였습니다. 이명박 당선인 주변에 정통부 입장을 대변할 인물이 없었습니다. 재무부나 경제기획원, 산자부 출신이 정통부 입장을 대변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해 1월 18일 이명박 당선인은 새 정부 장관 내정자를 발표했다. 지식경제부 장관에 이윤호 전 LG경제연구원장(주 러시아대사 역임)을 발탁했다.
형태근 당시 인수위 경제2분과 전문위원(방통위 상임위원 역임, 현 동양대 석좌교수)의 증언.
“이명박 당선인이 처음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남중수 KT 사장(현 대림대 총장)을 지목한 것으로 압니다. 남 사장이 왜 그 제안을 거부했는지는 모릅니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 부처가 살아남으려면 실적을 내야 한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당시 정통부 폐지와 관련해 진대제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과 인수위 참여 모 장관의 갈등설 등 각종 설이 난무했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그해 1월 19일.
김효석 대통합민주신당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연설에서 “정통부 폐지는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1월 28일 정부조직개편안을 놓고 현 권력과 미래 권력이 정면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30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참여정부의 정부조직은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이고, 민주적이고 신중한 토론과정을 거쳐 만든 것”이라며 “굳이 떠나는 대통령에게 서명을 강요할 일이 아니라 새 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법은 새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인수위의 조직개편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제2의 과학기술입국을 천명했던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여성가족부 확대 개편, 과학기술부의 부총리급 격상, 과학기술혁신본부 신설, 예산처의 경제부처 독립,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신설, 정보통신부의 성과 등의 의미를 거론하며 “이런 부처들을 통폐합하는 것은 참여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재의 요구를 거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어 △차기정부 조직개편안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논거와 내용 △차기 정부 조직개편에 대한 현 정부 입장이 담긴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인수위는 이날 오후 5시 ‘오만과 독선의 발로’라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명박 당선인은 이날 낮 인수위 파견 공무원들과 인수위 식당에서 오찬을 했다.
형태근 전문위원은 이 당선인 맞은편 자리에 앉게 됐다. 그는 이 자리에서 “IT는 전 부처로 확대해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정보통신부 직원들을 중용해 달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정사업본부 개편도 쟁점이 됐다. 인수위 경제2분과는 처음 우정사업본부 민영화를 검토했으나 우정사업은 국가가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민영화는 철회했다. 현안은 소관부처 이관이었다.
이와 관련한 정경원 당시 우정사업본부장(현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의 증언.
“윤동윤 전 장관을 비롯한 전직 장차관 등이 정통부 폐지 반대와 함께 우정사업본부는 방통위 소관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인수위 등에 전달했습니다. 방통위가 대통령직속기관이 되는 바람에 우정사업본부를 방통위 소관으로 할 경우 민영화 과정에서 체신노조가 반발하면 대통령에게 누가 된다는 인수위 측의 논리에 여당이 밀렸습니다. 그래서 지식경제부 산하로 넘어갔습니다.”
벼랑 끝 대치 속에 여야는 대통령 취임식 닷새를 앞두고 그해 2월 20일 4차 협상 끝에 정부조직개편안에 전격 합의했다. 여야는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직속기구로 하되 위원 5명 중 2명을 야당이 추천하는 것에 합의했다. 정통부 존치를 위해 뛰어다녔던 전직 장차관들의 노력은 ‘황야의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그해 2월 22일 오후 2시 국회는 임시 본회의를 열어 재석 210명 중 찬성 164명, 반대 33명, 기권 13명으로 정부조직개편안을 통과시켰다.
그해 2월 29일부터 새 정부조직개편안이 발효됐다.
이에 따라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던 독창적 정부조직인 정통부는 출범 14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TDX 개발과 CDMA 세계 첫 상용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등으로 한국의 국가 브랜드였던 ‘ICT 강국’ 주무부처인 정통부의 퇴장은 허무하고 쓸쓸했다. 정통부를 벤치마킹한 국가만 29개국에 달했다고 한다. 그런 정통부를 이명박정부는 단번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날 오전 11시 유영환 장관은 이임식에서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과 직원 여러분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얼굴을 들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부처를 지키지 못한 죄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박근혜정부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발족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통부 폐지는 이명박정부의 대표적 실책이란 평가를 받았다. 2012년 8월 12일 이상민 민주통합당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27개 출연기관과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명박정부의 실책으로 정통부와 과기부 폐지를 들었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은 2013년 1월 8일 연구기관·학계 등 회원 1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81%가 정통부와 과기부 폐지를 실책이라고 응답했다.
김성재 전 김대중도서관장(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문광부 장관 역임)은 기자에게 “이명박정부의 정통부 해체는 크게 잘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2010년 3월 18일 기자들과 만나 “정통부 해체는 잘못됐다”고 말했다.
2010년 4월 13일.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도 “정보통신과 콘텐츠, 원천기술 등을 총괄한 통합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통부가 간판을 내리던 날 전직 정통부 출신 관료 S씨는 “평생 처음 엉엉 소리 내 울었다”고 회고했다. 정통부는 이날 추억 속의 앨범이 됐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