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하고 싶죠. 온라인과 모바일 뱅킹 시스템 독자 분리해서 자회사 만들면 인터넷 전문은행이 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금융 규제로 설립 자체가 힘듭니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타당성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그런데 법적인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유권해석을 받을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IT가 발달하면 뭐합니까. 해외에서 10년도 더된 인터넷전문은행을 한국에서만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은행 현장 일선에서 나오는 말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은 두가지 복선의 의미가 있다. 글로벌 시장 개척이 힘든 전통금융사는 내수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출 대안으로 인터넷기반 전문은행이 필요하다. 점차 융복합화 되는 금융시장에서 더 이상 오프라인 창구 기반으로는 생존이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존재한다.
최근 모바일 빅뱅을 이끌고 있는 IT기업에게 인터넷 전문은행은 플랫폼 안착에 날개를 달아줄 ‘동력’이 된다. 송금 등 극히 제한적인 금융사업을 하려고 이들 IT기업이 금융시장에 진출한건 아니다. 해외에서처럼 ‘네이버 은행’ ‘다음카카오 은행’을 만들기 위함이다. 때문에 인터넷 전문은행은 IT기업이 앞으로 지향하는 비즈니스 플랫폼이 된다.
◇다시 불붙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한국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은 10년째 가로막혀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에 필요한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타당성에 근거한 의견에 불과하다.
2001년 SK텔레콤과 롯데 등 대기업과 안철수연구소, 이네트퓨처시스템 등 벤처기업 20곳은 공동 출자를 통해 국내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 브이뱅크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수익모델 미비와 외국 금융사 자금유치 실패, 정책당국의 전문성 결여로 무산됐다.
당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시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던 ‘동일인 지분한도 4% 규정’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계 금융사로부터 10% 이상의 지분투자를 유치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2008년 금융위원회가 금융규제 개혁 일환으로 은행법 개정을 통해 제도 개선을 추진했지만 입법에는 실패했다. 금융당국은 인터넷 전문은행의 업무 범위 설정, 최저자본금 요건완화, 금융실명제 문제를 주요 과제로 선정하고 그 해 10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조항이 포함된 은행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는 은행산업 부실 가능성과 과당경쟁 우려를 들어 은행법 개정안에서 관련 조항을 삭제해 ‘무위’로 돌아갔다.
정부가 세 번째 도전에 나섰다. 하지만 규제는 10년째 그대로다.
◇금산분리·금융실명제 완화하되, 보완대책 있어야
대면거래 없이 인터넷과 모바일만으로 은행업을 하는 인터넷 전문은행은 국내에서 규제의 문턱 때문에 설립 자체가 무산되거나 이뤄지지 않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금융위가 규제완화 가능성을 직접 내비치며 기대를 높였지만 아직 구체적 실행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금융위는 지난 7월 금융개혁 제안과제 검토 결과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허용’을 중장기검토 과제로 분류했다. 현행 은행법(은행법 제8조)상 업무범위와 리스크에 무관하게 최소 자본금 등의 진입요건을 일률적으로 규정함에 따라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이 곤란하다.
금융위는 최소 자본금을 낮추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계좌 개설시 대면으로 실명을 확인토록 규정한 ‘금융실명제’도 큰 장벽이다. 실명확인절차를 대체할 새로운 방안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온라인 플랫폼 기반 기업들 대부분이 산업자본으로 분류되는 만큼 금융업 진출에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 분위기는 달라졌고 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구글, 애플, 알리페이 등 내로라하는 해외 IT기업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금융 채널은 90% 이상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전이됐고 소비자 금융 패턴도 모바일을 지갑처럼 사용하는 이른바 ‘스마트 금융3.0’ 시대가 열렸다.
이제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은 책상머리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거대 해외 금융 플랫폼을 견제하는 필수 전략이 된 셈이다.
무점포 영업을 통한 저렴한 업무처리 비용을 이용해 전통 금융보다 유리한 금리와 가격경쟁력이 발생한다. 지역과 영업 제한이 없는 활동반경, 영업점 방문 없이 금융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확장성은 비대면 채널 전환 시대에 적합한 최적의 금융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미 많은 은행과 IT기업들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을 검토 중이거나 타당성 착수에 돌입했다. 모바일 빅뱅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한국형 ‘모바일 은행’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금융당국은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에 발목을 잡고 있는 금융실명제에 따른 고객 실명확인 절차 대체 방안을 찾고, 설립자본금,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진입규제 개선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서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원은 “국내에 인터넷 전문은행이 설립되기 위한 최대 걸림돌은 금산분리와 소비자보호 관련 규제가 될 것”이라며 “기존 은행에 비해 최소 자본금 기준을 낮게 설정하는 등 대응방안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