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단행된 삼성 사장단 인사는 ‘신상필벌’ 원칙을 철저히 고수하면서도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사업부문 핵심 3인방을 그대로 유지해 변화속에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실적이 악화된 곳에 대해서는 확실히 책임을 물었지만 의욕적으로 시장을 뚫고 있는 사업부에 대해서는 강한 신뢰를 나타냈다. 경영승계가 한창 진행 중인 것이 감안된 것으로 처음 사장단 인사에 나서는 이재용 부회장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란 반응이다. 업계는 이번 사장단 인사의 방침은 이번 주에 단행될 임원 인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본다.
◇‘신상필벌’ 원칙 적용
사장 승진자 3명은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의혹 폭로가 있었던 2008년 5월 인사(사장 승진자 3명) 이후 가장 적은 승진 규모다. 2009년 초 12명 사장단 승진 인사 후 매년 말에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서는 2009년 10명을 시작으로 2010년 9명, 2011년 6명, 2012년 7명, 2013년 7명 등이 새롭게 사장으로 올라섰다. 매년 6~10명이 승진한 것에 비하면 올해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삼성전자를 포함해 많은 회사의 경영실적이 부진했다”며 “승진 인사 폭을 예년보다 축소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실적이 개선된 곳은 확실하게 챙겼다. 삼성전자 TV와 메모리 사업부문이 대표적으로 올 한해 악화된 모바일 부문의 실적을 만회하는데 기여했다. 김현석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이 이끈 TV사업부는 ‘곡면(커브드)’ 시장을 열었으며 한 때 부진했던 초고화질(UHD) 해상도 시장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올해 9년 연속 글로벌 TV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이 확실시 되는 것도 인정 받았다. 메모리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전영현 사장도 삼성 메모리 부문 실적 개선에 크게 일조했다. 3분기 삼성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41.7%에 달한다.
◇모바일 사업부 대폭 수술 예고
실적 부진으로 퇴진설이 나오던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IM) 부문 사장 유임은 변함없는 신뢰의 방증이다. ‘갤럭시 신화’를 만든 주역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줘 중저가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 경쟁을 준비한다는 복안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록 올해 중국 업체가 주도하는 중저가 경쟁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지만 삼성전자는 애플발 스마트폰 쇼크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며 “갤럭시 시리즈를 성공시킨 신 사장이 위기 탈출 적임자라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 삼성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신 사장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분야에서 글로벌 1위로 올라서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며 “앞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부진한 실적에 대해서는 IM부문 사장급 3명이 책임을 졌다. 이돈주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과 김재권 무선사업부 글로벌운영실장, 이철환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이 2선으로 물러났다. 신 사장 유임으로 급작스런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사장급 3인 2선 후퇴로 경고 메시지 또한 분명히 했다. IM부문이 비대하다는 지적에 따라 조직 슬림화 작업도 시작했다. IM부문의 사장급 임원은 홍원표 미디어솔루션센터(MSC)장의 글로벌 마케팅전략실장 이동으로 신 사장 이외에 김종호 글로벌기술센터장 등 2~3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확인된다. MSC는 해체설이 나왔지만 조직만 축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변화’보다는 ‘안정’…경영 승계와 맞물린 듯
이번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후 처음 단행해 재계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이 부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란 반응이었다. 결과론적으로 삼성의 인사 원칙이 철저히 고수됐다는 측면에서 기존 인사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삼성전자 사업부문 대표 교체를 비롯해 조직 통폐합설까지 나왔지만 실제로는 단행되지 않아, 변화 보다는 안정을 택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삼성 내부에서는 경영 승계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현 경영체제에 대한 이 부회장의 신뢰가 반영됐다는 반응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경영승계와 실적 관리라는 두 가지를 함께 챙기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삼남매 승계를 위한 새판짜기가 한창인 상황에서 큰 폭의 변화는 조직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와병 중인 이건희 회장도 큰 폭의 변화를 주기에는 부담이 됐을 것이란 평가다. 이번 인사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각각 회장과 부회장 승진설이 돌았지만 실제로 이뤄지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그룹 컨트롤타워도 변화를 주지 않는 것 역시 틀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원활한 경영승계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무선사업부 등이 실적 만회를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며 “이번 인사에서 수뇌부가 교체되지 않았다는 것은 현재의 사업전략을 높이 평가하며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한다는 판단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준배·정진욱·서형석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