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2>이광형 미래준비위원장

미래전략이 새해 생존의 화두(話頭)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8일 미래창조과학부는 10년 이상 장기 비전을 제시할 ‘미래준비위원회’를 출범했다. 이광형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을 위원장으로, IT와 융합, 기술, 데이터 등 11개 분야 산·학·연 민간전문가 17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광형 미래준비위원장(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은 “미래준비위원회를 독자 운영해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미래전략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이광형 미래준비위원장(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은 “미래준비위원회를 독자 운영해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미래전략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윤성혁기자 shyoon@etnews.com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분야의 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심지어 1년 동안 한 번도 회의를 열지 않은 명목상의 위원회도 있었다.

이광형 위원장은 “미래전략은 지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현 정권 임기나 부처와 무관하게 정권이 바뀌어도 추진할 수 있는 미래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래는 창조하는 것”이라며 “한국 미래는 창업(創業)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1999년 SBS가 인기리에 방영한 젊은 과학도들의 꿈과 열정을 그린 TV드라마 ‘카이스트’에 등장한 괴짜 교수의 실제 모델이다. 당시 이 드라마 작가인 송지나 씨는 과학드라마를 구상하던 중 이 원장을 만나 아이디어를 얻었다. 송 씨는 이 원장의 강의를 듣고 연구실을 둘러본 후 고정관념을 벗어난 그를 카이스트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로 설정했다고 한다. 이 드라마는 시청률 30%대를 기록하며 1년 6개월간 방영했다. 이 원장은 드라마의 자문역도 했다.

그는 서재에서 TV를 거꾸로 시청한다. “TV를 거꾸로 보면 긍정적인 생각도 부정적으로,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위원장은 KAIST 교수시절인 2001년 초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KAIST 이사장 역임)이 기부한 300억원으로 IT와 바이오를 결합한 ‘바이오·뇌공학과’를 신설해 ‘융합’을 실천했다. 2014년 초에는 정 전 회장으로부터 215억원을 추가로 기부 받아 미래전략대학원을 신설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낮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영하의 겨울추위가 매서운 날이었다. 오전 10시 대전을 출발해 서울로 왔다는 그는 약속장소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맵시청바지 차림에 그가 착용한 붉은 색 머플러가 신세대 교수의 면모를 느끼게 했다.

-미래전략을 어떻게 만들 생각인가

▲매월 한 번씩 전체회의를 열어 10년 이상 장기 미래이슈를 발굴하고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12월 9일과 10일 강원도에서 합숙을 하며 구체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10년 안에 닥칠 미래변화는 무엇인가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관해 위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 미래준비위원회는 미래 이슈를 분석한 후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슈 2∼3개에 대해 매년 심층 전략보고서를 낼 계획이다.

-위원장 내정은 누구한테 통보받았나.

▲여러 채널을 통해 이야기가 있었다. 연말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장관실에서 만나 최종 결정했다.

-위원회의 운영은?

▲유명무실한 위원회는 싫다. 집행위원회처럼 활동할 방침이다. 정권의 이해를 떠나 독립적으로 국가미래전략을 만들 계획이다. 역대 정부마다 정부주도로 미래전략을 만들었지만 정권이 바뀌면 모두 폐기됐다. 현재 정부나 부처와 무관하게 10년 후 바뀐 정부에서도 필요한 미래전략을 만들 생각이다. 미래전략위원회를 장관 영향권 아래 두면 안 된다. 당장은 위원회가 잘 굴러 갈지 모르지만 장관이 바뀌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미래전략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미래전략도 정부가 실천하지 않으면 휴지와 같다.

-미래부에서 좋다고 했나.

▲위원회 운영과 관련해 최양희 장관에게 ‘다소 불편하겠지만 미래전략위원회는 전략의 영속성을 위해 장관 영향권 밖에 두는 게 좋겠다’고 건의했더니 최 장관이 “그런 시스템을 위원장이 만들어 달라”고 흔쾌히 수용했다. 나는 그동안 역대 정부의 여러 위원회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최 장관에게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회의에 참석해 회의비나 받고 적당히 지내면 그만이지만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최 장관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미래전략보고서는 언제 나오나.

▲1단계로 상반기에 앞으로 10년 후 한국에 닥칠 변화를 전망한 예측보고서를 낸다. 2단계로 하반기에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기술과 대응하기 위한 전략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한국의 미래 신성장산업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개인적으로 5대 산업을 말하고 싶다. KAIST에서도 제안한 메시아(MESIA)산업이다. 의료(medical)와 환경·에너지(environmental energy), 소프트웨어(software), 인공지능(intelligence), 항공우주(aerospace)와 같은 5개 산업이다. 이들 영문 첫 글자를 따 메시아라고 붙였다. 이 분야는 블루오션이다. 한국의 반도체나 스마트폰 같은 사업은 세계 선두에 있지만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 메시아 산업은 경쟁국이 미국과 일본이다. 우리 산업은 그동안 모방전략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전략으로 기존 산업을 지켜야 하는 한편 선진국을 ?아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전략으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국정기조가 창조경제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나.

▲창조경제의 핵심은 국가 미래를 예측하고 전략적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그 중심에 창업이 있다. 기술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창업이 활발해야 한다. 창조경제는 10년 전에 준비하고 실천했어야 옳았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벤처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창업을 안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창업하면 실패하기 때문이다. 현실이 그런데 누가 창업하겠나.

-창업 활성화 방안은 무엇인가.

▲모든 문제의 정답은 현장에 있다. 정부가 아무리 창조경제를 외치고 창업을 강조해도 지금대로라면 공염불이다. 내 자식이 창업한다고 할 때 지금은 모두 반대한다. 창업하다 실패하면 친가(親家)와 처가(妻家)까지 망한다는 말이 있다. 경제부총리나 산업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아들이 창업을 하겠다고 할 때 그들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위험부담을 줄여주지 않고 정책 당국자들이 말로만 창업하란다고 창업을 누가 하겠나. 문제의 본질을 해결해야 한다.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새로운 개념의 창업 보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창업자는 모두 보험에 가입토록 하고 보험으로 창업의 위험을 국가가 줄여줘야 한다. 창업자가 실패해도 개인의 노력과 고생한 것으로 상쇄하도록 해야 한다. 자동차나 의료사고시 보험으로 피해를 보상해 주지 않는가. 벤처라고 못할 일이 무엇인가. 두 번째는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 제도를 고쳐야 한다. 스톡옵션은 미국제도인데 김대중정부에서 벤처활성화를 위해 도입했다. 중소기업에서 우수 인력을 유치하는 유일한 수단이 스톡옵션이다. 스톡옵션은 현금으로 교환하기 전까지는 종이에 불과하다. 정부가 스톡옵션 세금부담이 과다하다는 지적에 따라 과세제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지난해 12월 2일 통과됐다. 근로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 양도소득세로 과세선택을 허용하는 게 골자다.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거듭 말하지만 내 자식이 창업하겠다고 할 때 부모가 찬성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창업이 활성화한다.

-한국과 미국의 창업을 비교해 보면.

▲한국과 미국의 50대 기업을 비교해 보면 한국은 50년 전에 생긴 기업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다. 창업한 기업이 별로 없다. 미국은 50대 기업의 절반이 신생기업이다. 애플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이베이 같은 기업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이내에 등장했다.

-한국 경제 미래를 어떻게 진단하나.

▲우리 경제의 주력은 6대 산업이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제철이다. 이 중 반도체와 자동차를 제외하고 나머지 산업은 하향세다. 반도체는 아직 경쟁력이 있다. 반도체는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 진입장벽이 높다. 후발국이 대규모 투자를 해도 금방 따라오지 못한다. 스마트폰은 다르다. 자동차는 앞으로가 관건이다. 전기자동차, 무인자동차라는 두 개의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자동차업체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미래가 달려있다.

-미디어빅뱅 시대다. 관건은

▲결국 플랫폼(platform) 싸움이다.

-좌우명은.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진다. 이루지 못하는 건 포기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선(善)한 사람이 이긴다. 악(惡)이 선을 이길 수 없다.

이광형 위원장은 서울대와 KAIST에서 산업공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INSA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로 바이오뇌정보, 퍼지이론, 지능시스템 분야에서 국제 연구논문 120여 편을 발표했다. 3차원 창의력 개발법을 창안했다. 현재 KAIST 미래전략대학원장과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책임교수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정책조정위원장과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벤처기업 나도 할 수 있다’ ‘퍼지이론 및 응용’ ‘21세기 벤처대국을 향하여’ 등 다수가 있다. 그는 캠퍼스 연못에 14년 전부터 취미 삼아 거위 10마리와 오리 2마리를 키우고 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