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구개발(R&D) 지원사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업무 중복 우려가 나올 정도로 여기저기서 R&D 혁신안 마련에 노력을 기울인다. 세부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문제의 출발점은 지금까지 R&D 예산 투입 대비 성과가 낮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R&D 지원 규모가 세계 최대 수준이지만 산출되는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문제다.
이렇게 된 이유야 여럿이겠지만 예산이 책정되고 쓰이는 프로세스가 부실한 탓이 크다. 정부가 예산을 필요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쓰거나, 지원해야 할 때를 놓치고 뒷북치는 일이 적지 않다. 정부가 제대로 지원해도 정작 지원받은 기업이나 기관이 사고를 치는 사례도 많다.
이 때문에 모 부처 R&D 업무 담당자는 ‘내 돈처럼’을 슬로건으로 내걸 생각이라고 한다. 부처와 기업·기관 담당자들이 국가 예산을 내 돈으로 여기면 1000원을 쓰더라도 허튼 일에 쓰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맞는 말이다. R&D 예산이 내 돈이라면 어디에 쓸지 한번 더 고민하고,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심사숙고해 결정할 것이다. 모름지기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남의 주머니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이니.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자칫 R&D 예산을 진짜 자신의 돈으로 착각한 나머지 개인의 이해관계에 얽혀 용처를 정하거나 그릇된 용도로 유용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허술한 연구비 관리가 도마에 오르는 것은 정부 예산을 정말 내 돈이라 생각하고 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내 꺼(것)인 듯, 내 꺼(것) 아닌 내 꺼(것) 같은 너’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가 큰 인기를 모았다. 남녀 간에 미묘한 이른바 ‘썸타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라는데, 우리 정부·유관기관·기업 R&D 담당자가 국가 예산을 이 노래 가사처럼 여겼으면 한다. 예산을 다룰 때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길 바란다는 뜻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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